새정부 주목받는 지자체·정책 | 서울 성북구 동행카드
전국 최초 청소년 수당 … 놀권리·환경 주목
만13세 누구나 연간 10만원씩 지원
지역 문화예술자원 연계 "꿈 찾도록"
"2010년 한 강연에 참석해 '4살 때까지 형성된 감성·지성·지능 등 발달정도가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 약 60%가 이 시기에 완성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이들이 출발선의 차이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고 결심한 게 그때였죠."
전통을 간직한 공간이 많아 '오래된 동네' 이미지를 갖고 있던 서울 성북구가 젊어지고 있다. 성북구발 아동 청소년 혁신 정책들이 잇달아 주목을 받으면서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로 변신하고 있어서다. 성북구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서울 자치구는 물론 전국 지자체들에 영향을 끼쳤고 새정부가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데 모델이 되기도 했다. 아동 청소년 동행카드는 성북구 아동 ·청소년정책의 대표 상품이다.
◆아이들 스스로 PC방 ·노래방 제외 = 성북구에 거주하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모두 아동청소년동행카드(동행카드)를 발급 받는다. 아이들은 연 10만원의 카드 포인트를 가지고 영화 ·스포츠 관람, 체육 시설 이용 등 다양한 문화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다. 2017년 11월 현재 3289명의 학생들에게 카드가 지급됐다.
동행카드는 아이들이 스스로 놀 곳, 쉴 곳을 찾을 수 있게 도왔다. 혼자 집이나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볼링을 치는 등 또래 놀이문화 형성에도 기여했다.
사업 추진 초기, 어른들은 카드 사용처를 어디로 할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노래방, PC방 등이 특히 문제였다. '단순 유흥성 업종이니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아동의 놀권리 보장 측면에서 포함시키는 게 맞다' 는의견이 충돌했다. 성북구는 논의가 진전되지 않자 카드 사용 주체인 아이들에게 직접 의견을 묻기로 했다.
총 637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는 김영배 성북구청장과 논의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70%의 아이들이 PC방을 포함하는데 반대했다. 노래방 포함 여부에 대한 답변은 더 놀라웠다. 55%가 노래방도 제외해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아이들은 "노래방, PC방 사용을 굳이 카드를 통해 권장할 필요는 없다" "학생들은 아직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PC방과 노래방을 많이 가게 될 것 같다" 등의 대답을 통해 어른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김영배 구청장은 "어른들도 노래방은 허용해도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뒤집었다" 며 "아동 ·청소년을 시민이자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 정책의 출발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고 말했다.
◆어른들의 편견, 아이들이 뒤집었다 = 어른들이 오히려 문제였다. 아이들에게 놀 권리를 주자는 제안에 학교 관계자는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구의회 예산심의와 조례제정 시 일부 의원들은 소득기준에 따라 선별 지원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성북구 한 곳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보니 대상 아동 수가 적어 전용 예매 사이트를 구축하거나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처를 확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던 지난 정부 기조도 발목을 잡았다. 복지부는 정부사업으로 추진 중인 문화누리 카드와 급여 수준 및 사업 지속성 등을 고려해 지급액을 조정하라고 요구했다. 당초 연 20만원을 제공하려던 것이 10만원으로 깎였다.
성북구의 아동 ·청소년 관련 정책 혁신은 동행카드에 그치지 않는다.
아동 청소년 정책이 한번의 사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포괄적인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4월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를 시작했다. 10월에는 '놀권리추진단' 을 구성해 놀이환경조성을 위한 실태와 환경 조사에도 나섰다. 체계적인 놀권리 확산을 위한 심포지엄도 열었다. 구는 매년 두 곳씩 놀이상상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직접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김영배 구청장은 "아동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고 태어난 환경이 모든 기회를 결정한다면 희망이 없는 사회" 라며 "다양한 문화예술체육 체험활동 제공을 통해 아이들이 꿈과 적성을 탐색하고 이 활동이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과 연계되면 아이와 마을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