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주목받는 지자체·정책 | 서울 양천구 나비남프로젝트

위기에 놓인 50대 독거남의 손을 잡다

2017-12-28 11:46:35 게재

6841가구 전수조사, 위기가구 404곳 발굴

텃밭가꾸고 여행 영화제작 … '사회복귀'

"출근하면 제일 먼저 지난 밤 사건 소식을 듣는데 의외로 50대 남성들의 고독사 소식이 많았어요. 복지정책이 65세 이상 어르신과 기초생활수급자에 집중되다 보니 50대 독거남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거죠."

지난 9월 나비남 멘토단과 공감여행을 떠난 양천구 50대 독거남들이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 양천구 제공


김수영 서울 양천구청장은 "사업실패, 가족해체, 이혼 등 문제와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운 사회구조가 50대 독거남들을 극단적 상황에 이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찾도록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나비남(나는 외로운 독거남이 아니다) 프로젝트 시작 동기를 밝혔다.

전수조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사업 구상 당시는 이미 예산 수립이 끝난 때였다. 마침 예정돼 있던 인구주택 총조사와 50대 독거남성에 대한 전수조사를 동시에 실시했다. 전수조사를 통해 지역 내 50대 독거남이 6841가구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기초조사 및 심층조사를 거쳐 이 중 404세대의 위기가구를 발굴했다.

◆93명 이웃, 멘토단 참여 = 전수조사 결과 50대 독거남들은 노인과 달리 선뜻 도움의 손길에 응하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자존심이 아직 강했고 노인 취급 받기를 꺼려했다. 상설화된 지원 기구를 만들고 이벤트성이 아닌 이웃처럼 자주 방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구는 우선 병원, 종교기관, 경찰서, 복지기관 등 32개 기관으로 구성된 양천 50대 독거남지원협의체를 꾸렸다. 나비남들이 언제나 찾아와 복지, 건강, 일자리 등 상담을 받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인 '50스타트센터'도 만들었다. 동별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33개의 다양한 사업을 펼쳐 독거남들을 사회와 다시 만나게 도왔다. 나비남 프로젝트의 핵심은 멘토단이었다. 50대를 지원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이들이 사업 취지를 듣고 멘토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주민들이 대부분인 멘토단은 나비남 프로젝트 성공의 1등 공신이었다. 멘토단은 나비남과 1대 1 결연을 맺고 친구 혹은 이웃이 돼 수시로 이들을 방문했다. 현재까지 안부확인, 말벗, 반찬 전달, 식사·등산 함께하기 등 1000여건의 활동을 진행했다.

◆자기 이야기로 영화 만들고 멘토 로 변신도 = 처음엔 사회가 내민 손을 잡지 않던 독거남들도 멘토단의 방문이 늘어나자 집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텃밭에 모이면 싸움부터 일삼던 사람들이 변해갔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다 연이은 부도와 사기로 주저앉았던 조 모씨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이혼 후 자녀와도 헤어졌다. 하지만 나비남 멘토단을 만나고 조씨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출품한 것. 영화를 상영하던 날, 조씨는 헤어졌던 자녀와도 다시 만났다. 목2동에선 나비남이 멘토로 변신한 사례도 나왔다. 도배 전문가였던 이모씨는 폐인처럼 지내다가 멘토단을 만났다. 등산, 여행 등을 통해 사회 활동을 시작한 이씨는 전공을 살려 주거 환경이 어려운 이들의 집수리에 참여했다. 이씨를 필두로 독거남 3명이 페인트칠, 환경정리 등에 참여했고 지역 업체는 전기시설을 지원하며 집수리 팀이 꾸려지게 됐다.

신월1동에선 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텃밭을 조성했다. 처음엔 귀찮아 하던 이들이 점차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지역아동센터, 경로당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고 있다.

김수영 구청장은 "'나비남'은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라며 "이들이 집 밖으로 나와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 고독사하는 50대가 사라지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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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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