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 열 환경재단 이사장
"미세먼지 '반짝' 관심, 시민·정부 인식차 커"
환경난제, 타영역과 융·복합으로 해결 … 4차산업혁명시대 '나만 전문가'라는 아집 버려야
23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최 열(69) 환경재단 이사장은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12일부터 18일까지 6박7일간 '그린보트' 항해를 마치고 온 그는 선상에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나눈 진솔한 대화에 아직도 심취해 있는 듯 했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특강을 했는데 청중은 물론 본인 만족도도 높았어요. 청바지를 입고 강연을 하는데 자유롭고 해방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디다. 허허. 이번 프로그램에는 정 교수 추천으로 노홍철씨도 참여했는데 정말 가식이 없는 분이었죠. 다른 분야와 융합을 하더라도 내가 아는 사람을 추천하는 건 이상적이지 않아요. 서로 서로 추천을 해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린보트는 동북아시아의 환경, 사회문제를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으로 통찰하고 해결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올해 주제는 '소중한 지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로 어린이 청소년 기업인 공무원 예술가 등 약 1400명이 크루즈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후쿠오카 등을 방문했다.
선상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과 함께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환경과 인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등 다양한 토론이 이뤄졌다.
■ 미세먼지 관련 법안 40여건, 아직도 국회서 논의중.
환경재단은 지난 2월 27일 미세먼지센터를 창립했다. 특이한 점은 환경공학자나 보건학자들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빅데이터전문가 건축가 광고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첫 걸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선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세먼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봤죠. 미세먼지 관련 단어 5억여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서 학자가 연구한 사항을 발표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죠. 또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체계가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 국회에서 관련 법안 40여건 중 단 1건도 통과가 되지 않았어요. 고농도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3월말 국회에서 뒤늦게 관련 법안들을 논의했지만 결론이 난 건 없죠. 이렇게 되면 미세먼지 관련 법안은 또다시 뒷전이 될 수밖에 없어요. 미세먼지가 다시 심해지는 가을에야 반짝 관심을 얻겠죠."
환경재단은 미세먼지 해결 촉구를 위해 3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미세먼지 정책 촉구 옐로카드 캠페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회의원 290여명에게 미세먼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면서 옐로카드를 보냈다. 최 이사장은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달라는 의미로 보낸 것"이라며 "30여명에게서만 답변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부와 중국 환경보호부를 대상으로 고농도 미세먼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죠.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차원에서 시행한 건데 아직 중국 환경보호부로는 가지도 못했어요. 환경부로부터만 미세먼지를 없애기 위해 그동안 노력을 많이 해왔으니 소송 기각 요청을 내겠다는 취지의 답변서만 받았습니다. 미세먼지로 국민들은 시들어 가고 있는데 국민들과 관할 부서와의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달았죠."
■ 지난 9년간의 잘못 바꾸려면 '나'부터 달라져야.
5월이면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된다. 문재인정부는 과거 정권와 달리 환경 친화적인 정부라며 기대감을 모았지만 물관리일원화 등 관련 공약이 실행된 것은 아직 많지 않다. 최 이사장은 환경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과거 정부에 비해 친환경적인 정부라고 하지만 관료들은 그대로죠. 장·차관이나 대통령 등 몇몇 사람들이 바뀌었지만 다수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과거 환경부가 4대강 사업 관련해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냈나요.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해당 사업의 문제를 지적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부역을 했죠. 종전에 가져온 생각들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변화가 있을 수가 있나요.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리 준비를 했다가 과거 반성을 먼저하고 6개월 안에 확 바꿨어야 하는데…. 안타깝죠."
그는 최근 폐비닐 등 쓰레기 수거 대란 사태를 보면서 변화를 이끌려면 '나'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진리를 재차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근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수돗물을 왜 페트병에 담냐며 서울시의 아리수 생산에 문제제기를 했는데, 전 옳은 지적이라고 봐요. 그런데 문제는 환경부부터 바뀌어야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죠. 단적으로는 환경부에서 벌이는 다양한 행사부터 1회용품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쓰레기 수거 대란 문제를 또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폐기물 발생량도 줄여야 하는데 정부가 먼저 나서야죠."
나아가 최 이사장은 시민들이 힘을 모아 촛불항쟁으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 만큼 이제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4차산업혁명시대와 보폭을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이다.
"융·복합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자기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죠. 이념에 사로잡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데, 이념은 결국 어느 순간에는 깨지게 되어 있어요. 최근 이념이 깨지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도리어 머리에 고정관념이 많으면 미래를 예측하고 헤쳐나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나도 나이가 들었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위해서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장애물은 되지 말아야죠. 후손이 어려움이 겪는데, 그런 고집은 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