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미국만의 문제였나

2018-09-28 11:33:46 게재

포린어페어스 "당시 교훈 망각 … 다가올 위기에 대응 못해"

"2008년 9월과 10월은 1930년대 대공황을 넘어 세계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때였다." 이는 2009년 11월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가 1년여 전 상황을 되돌아보며 한 말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최신호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현재, 버냉키의 평가는 정확했다. 21세기식 금융위기의 전형을 보여준 2008년은 위기 전개 속도와 규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지적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숨겨진 이야기 △교훈의 망각 △다가올 위기에서의 대응 등을 다각도로 짚었다.

금융위기가 전개된 과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07년부터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집값이 폭락했다. 수많은 집주인들이 모기지(장기주택대출) 할부금을 연체했다. 금융기관들이 곧바로 위태로워졌다. 글로벌 금융, 증시, 채권시장이 깊이 연관돼 있던 탓에 위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 거대 금융기관으로 확산됐다. 2008년말 벨기에와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라트비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러시아 스페인 한국 영국 미국의 은행들이 존폐 기로에 섰다. 많은 은행들이 붕괴했다. 또 상당수 은행들이 파산을 앞두고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은 현대사에서 최악의 경제참사로 기억된다. 어설픈 정책 대응이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하지만 대공황조차 2008년 위기만큼 동시다발적 규모로 전개되지 않았다. 대공황 당시에도 많은 은행이 파산했지만 1929~1933년 5년 동안 점점이 발생했다. 2008년엔 폭발의 규모와 속도가 전례없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2007년과 2008년 사이 전 세계 자본 흐름(gross capital flows)의 90%가 멈춰섰다.

돈이 돌지 않게 되면서 금융위기는 곧 실물경제로 전이됐다. 2008년 국제무역은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위축됐다.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4월까지 단 9개월 동안 국제무역의 22%가 급감했다. 대공황 당시 그 정도 규모로 무역이 위축되는 데엔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8년말부터 2009년초까지 미국에서 매달 80만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2015년까지 약 900만 가구가 집을 압류당했다. 1930년대 거대한 흙모래 폭풍이 미국 중서부를 강타한 '더스트 볼'(Dust Bowl) 사건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집단 강제 이주였다. 유럽에서는 은행이 부실해지고 공적금융망이 취약해지면서 유로존 해체 위기에 몰렸다.

포린어페어스는 "금융위기 10년 뒤인 현재 2008년의 의미와 그 여파에 대해 일치된 견해는 거의 없다. 금융위기의 이런저런 측면에 대한 부분적 합의만 있을 뿐"이라며 "금융위기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내용은 잊히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금융위기로 치닫게 한 원흉으로 정부의 감독 소홀, 월가의 범죄적 행태가 거론돼 왔다. 유럽에서는 모든 비난을 미국으로 돌리는 데에 관심을 쏟았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은 미국과 유럽의 금융인들이다. 만약 미 연준의 발빠른 대응이 없었다면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럽의 실물경제를 붕괴시켰을 터였다. 연준은 글로벌 뱅크런을 막기 위해 20세기 산물인 대서양 커넥션을 지렛대로 활용해 위기에 대응했다.

'미국만의 문제'라던 유럽의 착각

2008년 이후 등장한 가장 보편적 설명 중 하나는 금융위기를 예견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후에 만들어진 핑곗거리일뿐이다. 실제 금융위기에 대한 경고는 많았다.

전 세계 거시경제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글로벌 불균형을 경고해왔다. 미국이 무역과 재정에서 막대한 쌍둥이 적자를 기록하는 반면 중국은 넘치는 달러를 활용해 미국 국채를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불균형으로 대규모 달러 매도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우려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2006년 '코요테 모멘트'(Coyote moment)를 거론하며 "미국 경제의 허약한 펀더멘털을 갑자기 인식한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던질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전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금리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요테 모멘트란 두려워했거나 피하고 싶었던 상황에 지금 처해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순간을 말한다.

하지만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경제학자들은 신호를 잘못 읽었다. 위기가 닥치자 중국은 미국 자산을 매도하지 않았다. 물론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패니매'나 '프레디맥' 같은 모기지 대출업체에 대한 투자를 줄였지만, 중국은 미 국채 매입량을 오히려 더 늘렸다. 중국은 달러에 대한 약세 매도에 나선 러시아에 동참하지 않았다. 2008년 가을 대다수의 예상과 달리 달러가치는 오르고 있었다. 미국 금융당국이 맞닥뜨린 건 미중 대결로 인한 달러 붕괴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관통하는 금융시스템, 즉 금융자본주의의 내적 폭발이었다.

유럽인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위기는 미국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총체적이었다. 2008년 9월 13~14일 당시 미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은 파산 위기에 몰린 자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를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에 매각하려 했다. 하지만 영국 재무장관 앨리스테어 달링의 반응은 단호했다. 그는 폴슨 장관에게 "미국의 암덩어리를 수입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영국 은행들은 이미 그보다 더 심한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8년 위기, 왜 역사상 최악이 됐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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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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