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단독보도
안동에 대규모 ‘모감주나무’ 새 군락
4km 절벽지대 아래 1000여그루 이상 서식 추정
길안천 구하도 옆 … 3km 상류 묵계리에도 분포
문 대통령, 작년 평양방문 때 백화원정원에 심어
“숲 바깥에서 눈으로 센 숫자만 500여그루가 넘는다. 절벽 위에 자라는 개체, 어린 개체들까지 포함하면 1000그루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런 규모의 내륙지역 단일 자생지는 처음이다.” 박기룡 경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식물분류학) 교수의 말이다. 박 교수는 “접근이 쉽지 않은 절벽지대 아래 경사면이고 규모와 개체수에서 인위적으로 식재한 숲으로 보기 어렵다”며 “절벽 아래쪽으로 흐르던 강을 따라 흘러온 종자들이 정착한 자생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6월 26일 오전 박기룡 교수와 함께 경북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 절벽지대를 찾았다. ‘모감주나무’(Koelreuteria paniculata) 자생지 군락은 길이 약 3.7km였고 폭은 절벽지대 경사면이라 정확한 측정이 어려웠다. 도로를 벗어나 절벽 아래로 내려가니 예전에 강(길안천)이 흘렀던 흔적이 뚜렷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콘크리트 농로가 군데군데 이어졌다. 숲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차를 타고 가면서 한 그루 단위로 세었던 모감주나무들이 한 그루가 아니라 여러 그루인 것을 알 수 있었다. 20리마다 심었던 길라잡이 나무인 ‘시무나무’(Hemiptelea davidii)가 모감주나무와 함께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도 특이했다.
큰 모감주나무는 근원직경(밑둥지름) 약 40cm 정도로 측정됐다. 큰 나무에서 지름 5cm 정도의 가지 줄기를 하나 잘라 수령을 확인하니 약 20년 정도, 큰 나무의 경우 최소 80년 이상의 수령으로 추정됐다.
박 교수는 “이곳 자생지에는 모감주나무들이 절벽지대 골짜기 깊숙이, 심지어는 절벽 꼭대기까지 분포한다”며 “지형이 험해 전체 군락지를 다 볼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내륙지역 최대 모감주나무 자생지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곳보다 상류 쪽에 모감주나무가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천지리에서 3km 상류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 입구 방제림(홍수방지용으로 조성한 마을숲)에서 3그루의 모감주나무가 확인됐다. 이곳 모감주나무의 크기도 밑둥지름 40cm 정도였다.
묵계리 방제림에는 수령 수백년 이상의 ‘팽나무’와 ‘시무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말채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박 교수는 “이 나무들이 천지리 모감주나무 군락의 모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가깝고 길안천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럴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만큼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에 동행한 임창호(안동시·자영업)씨는 “요즘 만휴정을 찾는 이들이 많은데, 길안 모감주나무숲과 묵계리 방제림은 만휴정 가는 길에 있다”며 “보호림으로 지정하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관찰로를 조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백화원 정원에 기념식수를 해서 주목을 받은 모감주나무의 꽃말은 ‘자유로운 마음’, 나무말은 ‘번영’이다. 노란 꽃잎이 비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영어권에서는 ‘황금비 나무’란 뜻으로 ‘Golden rain tree’라 부른다.
2018년 산림청 수목 분포 조사에서 △경북 영양 무이산(약 1000㎡) △영양 감천리(약 1500㎡) △경북 청송 진보면(약 6000㎡) 등 3곳의 자생지가 더 확인됐고 최근 국립수목원 산림생물표본관 데이터베이스에 △안동시 임하면에서 채집된 표본정보가 추가됐다.
▶ "내륙지역 군락지 발견 후 자생종 분류" 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