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취미가 무엇입니까?
한국인 삶에 영향 준 시대상황과 취미
언제부터 독서와 음악이 한국인의 취미가 되었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관계를 트는 말로 흔히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곤 한다. 취미를 현대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늠하는 개인적 지표로 여기기 때문이다. 취미는 한자 취(臭)와 미(味)로 이뤄져 있어 언뜻 역사가 오래된 개념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 '취미가 무엇입니까?'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용하는 취미라는 말은 100년 전쯤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상의 문화에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취미는 한국 근대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여가시간에 특정한 목적없이 활동하는, 지금의 취미 개념은 전근대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취미라는 말은 취향(taste)과 취미활동(hobby)의 개념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났다. 이것을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 'taste'를 취미(趣味- 전문적이지 않고 즐기는 일)로 번역해 쓰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취미는 서구에서 기원해 일본을 경유해 들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대중적인 취미 중 하나인 '영화 보기'는 1920년대 이후 급속히 확산됐다. 신파극과 함께 활동사진이라는 복제기술이 유입되자마자 인기를 끌었다. 영화관은 1930년대 이미 100여개로 늘었고 관객수는 1935년 880만명을 기록했다. 신문과 잡지에서는 극다광, 영화광, 키네마 팬, 영화청년 등으로 불렀다. 대중문화를 통한 취미공동체의 맹아를 보여줬다.
1932년 당내 최고의 신파극 여배우 '이애리수'는 빅타레코드에서 '황성옛터'를 취입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황성옛터'는 원래 신파극 막간에 불린 노래였다. 신파극 관람과 유행가 레코드 음반 감상은 선순환을 이루며 식민시기 대중의 감각을 형성했다.
취미는 20∼30년 만에 인간관계와 문화생활 등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하는 기호가 됐다. 20세기 초반 이미 결혼 조건으로 취미가 맞는 사람이 언급되는데, 이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취미가 인간적 자질을 대표하는 요건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취미는 개인 프로필을 이루는 현대인의 조건이 됐다. 학적부나 이력서 등의 공사 문서에 기록됐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취미는 퇴폐문화로 낙인찍으면서 정화대상, 건전한 취미 유도 등 개인의 '취미생활'에 개입했다. 1970년대 장발 금지 미니스커트 금지, 금지곡 등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는 20세기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한 취미 개념 역사를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