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긴급조치 국가배상책임 인정해야"

2019-09-30 11:37:09 게재

이상희 변호사 "박정희 정권 인권침해 누구도 책임 안 져"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로 피해를 입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판례는 부당하다."

윤진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긴급조치와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그는 "국가의 조직적이고 고의적인 불법행위에 저항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을 법원이 이처럼 각박하게 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며 "대법원은 판결을 변경해, 대통령이 위헌인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이 불법행위가 되고 그로 인한 피해자는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9월 26일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긴급조치와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사진 서울지방변호사회 제공


◆대법원, 헌재 "긴급조치는 위헌" = 윤 교수에 따르면, 이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처벌받았던 피고인들이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며 재심을 청구한 사건에서, 2010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제1호의 내용이 긴급조치권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해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그후 2013년 4월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해, 2013년 5월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제4호에 대해 같은 취지에서 위헌으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도 2013년 3월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및 제9호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죄형법정주의,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긴급조치 피해자들 배상청구 인정 안 해 = 윤 교수는 "긴급조치가 위헌으로 선고되자, 그에 의해 처벌받았거나 수사받았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014년 10월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헝벌에 관한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 그에 기초한 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공무원의 고의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는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해 구속하고 감옥에 집어 넣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저질렀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가 1000명이 넘고 가족까지 수 천명이 넘는 인권침해 사건에서 법원은 관련자 모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3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은 긴급조치 제9호의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했던 원심을 파기했다. "긴급조치 제9호가 사후적으로 위헌·무효로 선언됐다고 해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며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만을 질 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불법행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정태호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헌인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단순히 정치적인 책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법적인 책임도 부담해야 할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생명·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는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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