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건물에서 에너지를 캐다 ①
단열만 강조하면 한계, '건축+에너지' 융합시대로
현행 정부 규정, 진정한 탄소중립 아냐 … 부처간 협업 강화 필요
의외로 집에서 뿜어내는 온실가스가 상당하다. 전 세계적으로 건물 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나아가 이제는 건물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단열 등 에너지 절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초과 생산해 전력을 사고파는, 바야흐로 '건축+에너지-융합시대'로 대전환 중이다. 제로에너지 건축이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정부도 거창한 육성 계획을 내세웠지만 제자리걸음이다. 내일신문은 3회에 걸쳐 국내 제로에너지 건축 정책의 한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을 살폈다. <편집자주>
'2020년,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의 원년.'
국토교통부가 의욕적으로 내세운 제2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라 2020년 짓는 공공건축물(연면적 1000㎡ 이상)은 의무적으로 제로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2025년부터는 민간 영역(연면적 1000㎡ 이상, 공동주택 30세대 이상)도 의무적으로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지어야 한다. 2030년에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연면적 500㎡ 이상이면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포장만 화려할 뿐 실속이 없다는 지적을 한다. 이유인 즉, 우리는 흔히 제로에너지 건축물의 에너지 자립률이 100%라고 생각하는데 법적 정의는 그렇지 않다는 것.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세운 건축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로에너지 건물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2030년까지 건축부문의 BAU(배출전망치)대비 온실가스 감축률은 32.7%다.
◆전력사용량에 영향 주는 콘센트 부문 제외한 채 인증 =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및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에 관한 규칙' 등에 따르면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에너지효율등급이 1++등급 이상, 제로에너지 5등급 이상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면 된다. 에너지 자립률은 건축물 에너지 소비량 대비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을 말한다. 인증 유효기간은 10년이다.
이명주 명지대 교수(건축학부)는 "현행 규정에 따르면 평가범위가 난방 냉방 급탕 조명 환기 등 5개 부문에 불과하다"며 "전력 사용량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전제품 사용 등 콘센트 부문을 배제한 채 제로에너지 하우스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로에너지 건축 인증을 할 때는 난방 냉방 급탕 조명 환기 등의 에너지소비량을 1차 에너지소비량으로 바꿔 산정한다. 에너지 자립률은 1차 에너지 생산량을 1차 에너지 소비량으로 나누는 식으로 계산한다. 때문에 1++등급에 제로에너지 5등급 주거용 건축물이라 해도 탄소중립(넷 제로, 온실가스 순 배출 0)은 불가능하다. 1++등급의 주거용 건축물의 연간 단위면적당 1차 에너지 소비량은 60kWh 이상~90kWh 미만이다. 이 중 5등급이라고 하면 에너지 자립률이 20% 이상~40% 미만 수준이다.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정책방향에 영향 = 정부는 제로에너지 건축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준 제로에너지 건축물(Nearly Zero Energy Building)'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준 제로에너지 건축이란 제로에너지 달성이 어려운 경우 이에 준하여 제로에너지에 근접하게 국가가 정한 에너지 성능 목표를 달성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전제품 사용 등 콘센트 부문은 사실 건축의 영역이 아닌 개인의 전기 사용 패턴의 문제"라며 "궁극적으로 이 방향으로 가면 좋겠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방안이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제로에너지 건축이라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물이나 현상을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정책 설계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이다. 만약 제로에너지 건축이 불가능하다면 정부는 그냥 솔직하게 '패시브하우스 강화' 정도로 표현하는 게 맞다.
◆1차 계획 평가, 부처간 협력 미흡 = 전문가들은 정부가 패시브하우스 개념에서 벗어나 '플러스에너지' 건축물 확산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패시브하우스의 원조인 독일에서도 난방제로에너지→ 제로에너지→ 플러스에너지하우스로 단계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패시브하우스는 제로에너지 개념은 아니지만 열회수형 환기장치를 통해 공급하는 공기의 후가열(Post-Heating)이나 후냉각(Post-Cooling)만을 통해 실내 쾌적성을 확보하는 건축물을 말한다.
김용식 BJ파워 대표는 "종전에는 단열 등에만 신경을 써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에너지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빌딩 외벽에 일체형으로 태양광을 입히는 등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쓰는 구조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플러스에너지 하우스까지는 아니어도 제로에너지 하우스로 도약하기 위해 국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부처간 협업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제1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 평가 결과'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전문가 104명을 대상으로 1차 기본계획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부처간 협력체계 구축'이 2.95점(5점 만점)으로 가장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