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건물에서 에너지를 캐다 ②

취약계층에겐 '기존 주택' 개량이 더 시급

2020-02-26 10:56:05 게재

'그린홈' 사업중 전력절감은 16% 불과 … 시간 계획 등 구체적인 목표 필요

의외로 집에서 뿜어내는 온실가스가 상당하다. 전 세계적으로 건물 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나아가 이제는 건물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단열 등 에너지 절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초과 생산해 전력을 사고파는, 바야흐로 '건축+에너지-융합시대'로 대전환 중이다. 제로에너지 건축이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정부도 거창한 육성 계획을 내세웠지만 제자리걸음이다. 내일신문은 3회에 걸쳐 국내 제로에너지 건축 정책의 한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을 살폈다. <편집자주>

지난해 6월 국제연합(UN)은 '기후 아파르트헤이트'(Cimate Apartheid)를 경고했다. 부자들은 기후온난화로 인한 열기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로 인해 더욱 고통받게 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사회 불평등 문제도 커진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몸조차 제대로 펴기 힘든 공간에서 다 낡은 선풍기에 의존한 채 폭염을 견딜 수밖에 없다. 사진 이의종


2012년 뉴욕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는 기후 아파트트헤이트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뉴욕에서 수천명의 저소득층은 전력과 건강관리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며칠간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맨해튼의 골드만삭스 본사는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필립 알스턴 UN 특별고문관은 "부유한 국가는 온난화 기아 내전 등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지만 빈곤국은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기후 아파르트헤이트' 시나리오가 곧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후 아파르트헤이트' 한국도 현실화 = 기후 아파르트헤이트는 실제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고 있다. 열지수가 높아질수록 취약계층 사망률이 덩달아 올라간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소득 없는 노인, 독거노인들이 폭염 등 이상기후에 취약하다. 한부모가정, 아동부양가구 등 여타 취약계층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는 에너지절약형 주택공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부터 연면적 1000㎡ 이상 공공건축물에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 시행이 의무화됐다. 2025년에는 '30세대 이상' 공동주택까지 확대된다. 정부가 추진 중인 대표 시범사업은 노원 '이지(EZ, Energy Zero) 하우스'다. 2017년 노원구 하계동에 115가구를 신축했다. 태양광 발전, 지열히트펌프, 열회수형 환기장치 등의 기술을 적용했다.

에너지자급률이 79.4%(국제사회 계산법 적용시 122%)로 집계됐다. 지난해 2월엔 임대형 제로에너지 단독주택도 준공했다. 세종·김포·오산에 각 1단지씩 총 298가구를 공급했다. 같은 규모 아파트 대비 에너지 절감률이 약 60% 수준이다. 동탄2신도시, 세종, 부산에 480가구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단순융자지원 아닌 직접 지원 필요"= 그러나 현장에서는 신축주택보다 기존주택 개량사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 취약계층이 주로 낡고 오래된 주택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전국 단독·다가구 주택(395만채)의 74.8%가 2000년 이전에 지어진 외벽단열 50mm이하의 '추운 집'이다.

에너지절감형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1980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도 35%나 된다. 실제 사회 취약계층이 느끼는 냉·난방비 부담은 상당하다. 2016년 통계청 '소득 10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를 보면 월 소득 기준 1분위의 경우 경상소득 94만6007원 중 연료비로 7만2756원(7.7%)을 지출했다.

반면 10분위는 966만5633원 중 11만7616원(1.2%)을 사용했다. 1분위 계층의 연료비 지출액이 38.2% 적은 반면, 소득 대비 비중은 6.4배 크다. 국토연구원 설문조사(2012년) 결과, 사회 취약계층은 냉방비에 대해서는 75.3%, 난방비에 대해서는 90%가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병두 현대건설 도시시스템팀 차장은 "제로에너지건물 신축도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더욱 주력해야 할 부분은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효율등급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건물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면 종전 건물에 단열을 강화하는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토교통부가 신규 건물 기준만 강화하지 말고 기존 건물에 신규 건물에 버금가는 강화된 단열기준을 적용하는 동시에 단순융자지원을 넘어선 직접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주택 개량 사업하지만 턱없이 부족해 = 물론 정부도 기존 주택 개량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린 홈 사업'이 대표적이다. 15년 이상 지난 노후 영구임대주택 및 50년 공공임대주택 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사업규모가 초라하다. 2019년 사업비는 500억원이다. 베리어프리(장애인 경사로 등 47억4000만원) 생활안전(수배전방 욕실안전개선 등 309억원) 커뮤니티지원(21억6000만원)에 대부분을 투입하고 있다.

복도 창호(새시) 설치와 LED(발광다이오드)조명 교체, 콘덴싱 보일러(친환경 보일러) 설치 및 교체 등 에너지 절약사업에는 80억5000만원만 배정했다.

이는 전체 예산의 16%에 불과한 수치다. 성능·기능향상(수전교체) 예산 21억6000만원을 포함해도 20%(102억1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국토부 주택예산 1378억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미국에서 논의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거나 공공임대주택을 더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개념에 아직 한국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또 "미국 '그린 뉴딜'의 '10년내 공공임대주택 탄소제로화' 등과 같이 명확한 정책목표 설정을 해야 한다"며 "이를 실현할 시간계획 등 구체적인 공공임대주택 재생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건물에서 에너지를 캐다" 연재기사]

김병국 김아영 기자 bg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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