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계’가 n번방 성착취 빌미? “2차 가해 여전”
“과거 성범죄 사건에서 왜 짧은 치마 입었냐 ‘피해자 탓’과 같은 맥락 … 피해자다움 강요 말아야”
“그럴 만하니까 범죄자들이 접근했겠지.” “솔직히 피해자도 잘 한 거 없잖아?”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다룬 언론 기사에 흔히 달리는 댓글이다. 'n번방’ 가해자들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일탈계’(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촬영해 게시하거나 공유하는 SNS 계정)를 운영한 여성들을 타깃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급격하게 늘어났던 ‘2차가해’ 댓글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추적보도한 ‘추적단 불꽃’은 “피해자가 일탈계를 했으니 성착취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는 시각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라면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6일 추적단 불꽃에 따르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공론화 이후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2차 가해는 여전하다. ‘박사’ 조주빈이나 성착취 가해자들이 일탈계를 운영하거나 조건만남을 한 여성들에게 접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여성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는 등 온라인상의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추적단 불꽃은 “n번방과 박사방 범죄자들은 일탈계 사용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방에 들어온 관전자들은 피해자들에게 ‘그러게 누가 일탈계를 하라 그랬냐. 강간을 원했던 것 아니냐’고 했다”면서 “그러나 이는 과거에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그러게 왜 밤늦게 다니냐, 왜 짧은 치마를 입느냐’고 탓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일탈계는 나이를 불문하고 성적 호기심과 표현 욕구를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돼 왔다. 일탈계 운영은 문제가 아니다”면서 “평등한 성 역할과 성 인지 감수성 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의 피해자를 성인 남성, 가해자들이 그루밍하고 협박하며 성 착취를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2차 가해는 성범죄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진짜 피해자’ ‘가짜 피해자’를 구분해 순결하고 무고한 피해자만을 피해자로 인정하겠다는 식의 ‘피해자 감별’이 이뤄져왔다. 최근에는 이같은 2차 가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는 2차 가해성 댓글이 있을 경우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신속하게 신고하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지만 모든 2차 가해를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청소년 당사자들도 ‘일탈계’ 관련 2차 가해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지난 달 30일 성명에서 “여성 청소년이 ‘일탈계’를 하는 이유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다. 여성 청소년은 성에 관해 무지해야 한다는 사회의 편견은 (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성에 대해 발화할 수 없게 만들었다”면서 “일부 여론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찍어 올린 ‘음란녀’의 책임도 있지 않느냐며 피해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성폭력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 성폭력상담소 협의회 대표로 일한 배복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자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이 유독 잦다”면서 “가해자가 만든 범죄구조에 피해자가 유인을 당한 것인 유인 당했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문제다. 가해구조를 만든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6일 오전 10시30분경부터 '박사방'과 관련해 가상화폐 거래소 및 구매대행업체 20곳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순차 집행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측은 "이번 압수수색은 조주빈이 범행에 사용한 가상화폐 지갑 주소와 유료회원 등을 추가로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압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공범으로 알려진 A일병에 대한 구속영장이 5일 군사법원에 청구됐다.
'이기야’라는 닉네임으로 텔레그램에서 활동한 A일병은 '박사방'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타SNS 등을 통해 박사방을 홍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 3일 A일병이 복무 중인 부대에서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해 디지털 포렌식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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