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공정위 협공에 두 손 든 배달의 민족
"온 국민이 힘든 시기에…" 여론악화, 공정위도 "정보독점 주시" … 합병심사 걸림돌 될 듯
13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1일 개편한 수수료체계 '오픈서비스'를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사과문에는 김봉진 창업자가 직접 이름을 올렸다.
'배민 논란' 과정은 소비자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기업은 언제든 '폭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제 아무리 혁신기술과 아이디어가 뛰어난 스타트업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시장독점의 폐해에 대한 국민여론의 경계감이 얼마나 큰지도 보여줬다.
국내 스타트업으로선 사상 최대 규모인 배민과 요기요의 기업합병건도 기로에 섰다. 이번 사건으로 '독점 기업'이란 나쁜 이미지가 각인됐기 때문이다. 공정위도 '배민의 정보독점을 기업결합심사에서 엄격히 살펴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코로나 와중에 수수료 개편 = 배민은 지난 1일부터 건당 수수료 기반의 오픈서비스 상품을 내놨다. 쉽게 말하면 음식점이 내는 수수료를 정액제(월 8만8000원 울트라콜광고)에서 정률제(건당 5.8%)로 바꾼 것이다. 배민측은 기존 광고상품 '울트라콜'이 소위 '깃발꽂기'로 지역 광고를 독식하는 문제를 개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수 음식점들은 수수료가 인하되는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소상공인연합회와 음식점들은 '꼼수 인상'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때는 코로나19 여파로 음식점은 물론 다수 국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배달앱시장 1위 업체인 배민은 코로나19의 수혜업종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배달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배민의 수수료 개편에 대한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국민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악용해 독점업체가 자기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비자운동으로 번질 조짐 = 결국 배민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의 공격까지 받아야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배민의 수수료 개편을 '플랫폼 기업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배달앱 업체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 이용료 인상으로 과도한 이윤을 추구하며 자영업자들을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지사는 공공배달앱을 만들어 민간시장과 경쟁하겠다고도 했다. 여기에 다수 지자체들이 동조했다.
자발적 소비자 운동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였다.
일부 소비자들이 배달 앱이 아닌 전화로 직접 주문해 점주들이 배달 앱에 수수료를 내지 않도록 돕기로 나서면서다. 각종 혜택과 할인 쿠폰을 포기하면서까지 "현명한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직접 전화로 주문하는 소비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배민의 주문량이 눈에 띄게 줄기도 했다. 일부 소비자·시민단체들까지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공정위까지 이례적 언급 = 여기에 배민의 인수합병 건을 심사 중인 공정거래위원회까지 힘을 실으면서 상황이 급진전됐다.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은 "수수료 체계 일방변경 논란 이후 관련 상황을 챙겨보고 있다"면서 "수수료 문제뿐만 아니라 경쟁당국 입장으로선 특히 '정보독점'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신 공정위 사무처장도 "기업결합(합병)과 관련한 독과점 여부를 심사받는 도중 수수료 체계를 크게, 뜻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소상공인 유불리를 떠나 해당 업체의 시장 지배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기업심사를 앞둔 해당업체에 대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공정위가 이번 논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배민은 수수료체계 변경 열흘 남짓 만에 전격 취소했다. 배민의 백지화 선언에도 불구하고, 인수합병 심사는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독점의 폐해를 여론의 뇌리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앞서 배민(우아한형제)은 지난해 12월30일 요기요(딜리버리히어로)와 기업결합 관련 신고서를 공정위에 접수했다. 독일계인 요기요가 배민을 합병하는 형식이다. 당시 배민의 몸값은 40억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4조7500억원에 이른다. 국내 스타트업과 인터넷업체를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 중 가장 큰 규모다. 현재 배달앱 시장 점유율은 배민(55.7%), 요기요(33.5%), 배달통(10.8%)순이다. 배민과 요기요가 합병하면 점유율이 89.2%에 달한다. 업계 3위인 배달통도 딜리버리히어로 소유여서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은 100%가 된다. 공정위는 이르면 상반기 중 기업결합 신고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