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시대, 중소기업의 갈 길을 묻다│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소장
"기업은 냉철히 자기진단 … CEO, 변화흐름 인식해야"
구조조정·사업전환 등 다양한 대응전략 수립 필요
중기 혁신역량 추동하려면 정책·금융 혁신적이어야
코로나19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기존 세상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 개인 일상은 물론 산업과 경제에 뉴노멀(New Normal)을 급격히 진행시키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비상상황이다. 특히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기업 미래가 암담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만 한다. 내일신문은 코로나19시대에 중소기업 생존방법의 지혜를 얻기 위해 중소기업 전문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어려운 시기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중소기업은 냉철히 자신의 상황을 진단해 스스로 위기극복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금융은 중소기업이 혁신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결재와 전화통화를 마친 그는 자리에 앉아마자 '중소기업의 자기진단'을 강조했다.
'자기진단'은 기존 경제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요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이 현재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냉철하게 현재 기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낱낱이 확인한 후 대응전략을 짜야 한다는 논리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는 이치와 같다.
"진단을 통해 과감히 수술(구조조정)을 할 것인지, 새로운 영역을 찾아 사업전환할 것인지 등 다양한 방안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계획수립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최소 1년 이상 진행된다는 전제아래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 그만큼 위중한 상황이다.
걱정은 중소기업의 혁신역량 부족이다. 격변기인 요즘 무엇보다 필요한 건 도전을 주도할 혁신역량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에는 급변하는 경제상황에 맞설 도전정신을 갖춘 내부역량이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와 금융이 중소기업 혁신역량을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와 금융이 새로운 시대에 중소기업이 혁신성장을 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야 한다." 조 소장은 정부정책과 금융의 변화를 주문했다. 정부정책과 금융이 중소기업 현장기반 지원체계를 고도화해 중소기업이 혁신에 나설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를 위해 (가칭)혁신기업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중소기업이 혁신역량을 발휘해 코로나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넘기려면 정부부처 간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해서다.
"중소기업들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낸 DNA를 갖고 있다. 정부와 금융이 중소기업과 뭉치면 위기를 충분히 극복하고,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조 소장은 20년간 중소기업 현장과 연구에 몸담아 왔다. 국내에서 몇 안되는 토종 중소기업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중소기업계에 안착한 배경에는 벤처기업 경영과 창업 실패 경험이 있다.
부산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1년 당시 중소기업은행에 입사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중소기업진흥공단(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 직장을 옮겼다. 구체적인 중소기업정책을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중진공에서는 조사연구처에서 근무했다. 이때 중소기업 직접대출,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 등을 제안했다.
벤처붐이 일자 벤처기업에 뛰어 들었다. IT벤처기업의 전략담당과 CFO(재무최고책임자)를 역임하며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 부사장을 맡아 회사경영에 깊이 개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 있는 지인과 2000년 창업했다. 소프트웨어 방식의 화상회의 시스템 개발 벤처기업이었다. 지금의 줌(ZOOM)과 같은 기술이다. 기술은 선도적이었지만 당시 시장이 열리지 않아 1년만에 사업을 접었다. 사업실패 후 2006년 다시 기업은행에 재입사했다. IBK경제연구소 수석위원과 부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IBK경제연구소장 겸 북한경제연구센터장을 담당하고 있다.
■ 격변기에 중소기업의 대응전략은
중소기업 자신의 상황을 냉철히 분석해 스스로 대응전략을 세우는 게 급선무다. 자기진단 정확성이 떨어지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구노력이 철저히 우선돼야 한다. 이때 정부와 금융은 전문병원 역할을 해야 한다.
■ 중소기업의 혁신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인가.
중소기업 혁신역량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개별 중소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정부정책에 의존하며 국내시장에 안주하고 있다. 성장을 거부하고 영원히 '피터팬'으로 남으려고도 한다.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CEO부터 변화 흐름을 인식하고 적극 혁신에 나서야 한다.
■ 정부정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우리나라 중소기업정책은 세계 최고다. 하지만 정책이 위기 초기를 해소하는 소방수 역할에 맞춰져 있다. 생태계 구축으로 위기를 예방하는 게 필요하다. 혁신역량을 추동하려면 정책이 혁신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부처 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부는 역동적인 중소기업 현장 수요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은 없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
■ 금융이 매우 중요한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은 경제를 뒷받침하는 마중물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업계획도 '돈'이 충분히 흘러야 열매를 맺는다. 금융이 과거의 영업형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세상은 담보에서 신용으로, 대출에서 투자로 변하고 있다. 혁신금융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 은행은 큰 덩치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 그린뉴딜 정책이 중소기업에게 기회인가.
그린뉴딜 정책의 성공은 정책 지속성에 달려있다. 비대면 기술을 넘어 기후변화 등 세계의 고민과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기회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산업군이 형성될 것이다. 그린뉴딜 정책을 업종별, 품목별 등으로 세분화해 전략을 짜야 한다. 그린뉴딜정책을 통해 중소기업 혁신을 추동하고 확산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 중소벤처기업부 3년에 대한 평가는
중기부 설립은 바람직했다. 더 강화시켜야 한다. 다만 혁신을 추동하는 역동적인 정책 주진이 아쉽다. 정부부처의 협력을 적극 이끌어 내 현장에 근거한 실효성 있고 세분화된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