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을 췌장암으로' 의료진 과실
2020-11-30 11:47:09 게재
법원, 사망과 인과관계는 인정 안해 … 정신적 손해는 배상해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8부(심재남 부장판사)는 A씨 유족들이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2016년 8월 A씨는 경희대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은 후 좌측 쇄골 림프절에 악성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경희대병원은 A씨에게 췌장두부 및 팽대부암(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설명을 했고, A씨는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경희대병원은 '상세불명의 췌장의 악성 신생물'이라고 적힌 소견서와 진단서를 A씨에게 내줬다.
한달 뒤 서울대병원은 A씨에 대해 췌장암을 잠정 진단하고 각종 약물 치료를 실시했다. A씨는 세번째 항암제 치료 이후에도 목과 복부에서 덩어리가 만져진다며 의료진에게 호소했다. 서울대병원은 A씨에 대해 검사를 실시한 결과 췌장암이 아닌 신장암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뒤늦게 췌장암 치료제를 거두고 신장암 치료제를 투여했으나 A씨는 이듬해 10월 사망했다.
A씨 유족들은 서울대병원이 경희대병원의 영상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오진하는 바람에 신장암 환자에게 췌장암 치료제를 투여하는 등 신장기능이 완전히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이 경희대병원 자료를 제대로 확인했더라면 췌장암이 아닌 신장암으로 판단해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연명 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었을 거란 이야기다.
재판부는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이 경희대병원 췌장암 의심 진단을 함부로 신뢰하기 전에 각종 검사를 재판독하거나 망인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다음 적절한 치료를 시행할 주의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위반했다"며 "함부로 망인의 상태를 오진해 한동안 췌장암 관련 항암제를 불필요하게 투여하고, 신장암 진단 및 치료를 지연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에 따르면 췌장종양과 신장종양은 세포 성격에 차이가 있고 항암제에 대한 반응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 항암화학요법은 신장암에 크게 효과가 없어, 4기 췌장암과 신장암 치료는 각기 다른 항암제를 이용해 이뤄지고 있다.
재판부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병원 영상의학과를 통해 기존 경희대병원이 시행한 CT 등 영상검사 결과를 재판독할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독 결과가 나오기 전에 췌장암 치료제를 투여했다"며 "재판독 결과가 나온 후에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2차례나 췌장암 치료제를 투여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오진을 인정했지만 의료진의 치료로 A씨가 사망했다는 유족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망인이 서울대병원에 내원할 당시 이미 신장암 4기 상태였고 5년 내 생존률은 0~20%로 예후가 좋지 않다"며 "신장암 치료를 제때 받았더라도 생존기간이 유의미하게 연장됐다고 판단할 뚜렷한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인해 조금이나마 이른 시점부터 신장암을 진단받아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면서 "3개월간 전신 상태 저하를 가져오는 췌장암 항암제를 불필요하게 투여 받아 치료 기회 상실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A씨의 아내와 가족 등에게 모두 44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한편 A씨 유족들은 경희대병원이 췌장암으로 오진한 책임도 물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희대병원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 추가 검사 등을 예정했지만 A씨가 스스로 퇴원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했기 때문에 경희대병원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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