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포커스 | 무력화된 '일하는 국회법'
여당, '무리수' '꼼수' 동원 입법 독주 … 4개월 만에 두 차례
"민생 위해" "국민 명령" "급하다" 이유
상임위 활성화 한다면서 무력화 앞장
"민주주의는 과정, 인내 필요" 지적
174석의 '절대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거대 여당이 의원 수를 앞세워 관심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 지난 7월에 이어 4개월여 만에 두 번째 단독 무더기 처리다. 여당은 상임위와 법안소위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일하는 국회법'을 당론 제 1호 법안으로 지명하면서 상임위 중심주의의 핵심인 상임위, 법안소위 논의를 무력화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일하는 국회를 실천하기 위해 9월 1일 개의 이후, 총 15회 본회의 중 6회 법안처리를 실시해 총 400여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총 108건의 주요 입법을 추진, 처리했다"고 했다. 그는 "국민이 요구하신 개혁·민생·정의·공정의 4대 가치 실현을 통해 더불어 잘사는 대한민국,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제도적 기반을 다졌다"며 "민주당은 전 상임위에 걸쳐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민생·경제입법에 총력을 다했다"고 했다.
하지만 과정은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 권력개혁 과제중 국정원법은 정보위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여당 단독으로 넘어섰다.
◆자동부의 예정 세월호 특검법도 밀어붙여 = 법사위에서는 안건조정위에 회부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상법을 여당과 여당의 비례정당이었던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의 힘으로 밀어붙였고 전체회의는 여당 단독으로 넘어섰다. 여당은 또 '4·16 세월호참사 증거자료의 조작·편집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국회 의결 요청안' 역시 법사위 단독 통과를 강행했다. 9월 23일에 특검임명 요청이 들어와 3개월 이내에 상임위 심사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이달 23일이후엔 본회의에 자동부의토록 돼 있는데도 토론도 없이 통과시키는 강수를 뒀다. '5.18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및 왜곡처벌법'도 야당이 빠진 상태에서 여당단독으로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외통위에서도 여당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건너뛰었다.
정무위에서는 여당이 공정경제3법 중 공정거래법과 금융그룹감독법에 대해 안건조정위를 거쳐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공정거래법 안건조정위는 정의당 배진교 의원을 끌어들여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가 포함된 법안을 통과시킨 후 '전속고발권 유지'를 담은 수정안을 전체회의에서 가결시키는 꼼수를 썼고 금융그룹감독법은 제정법률로 필요한 공청회를 상임위 통과 당일에 급하게 여는 무리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참법)은 법안소위 논의도 시작하지 않은 채 통과됐다.
환노위에서는 근로기준법, ILO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이 여당 단독처리 됐으며 특수근로종사자 3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징수법 개정안)은 안건조정위를 거쳐 전체회의를 넘었다. 7개 법안을 여당 홀로 통과시켰다.
◆7월보다 더 심한 12월 = 지난 7월말과 8월 초에도 민주당은 '민생'을 앞세워 부동산 관련법안을 단독 통과시켰다. 임대차 3법과 부동산 관련 세법 중엔 법안소위를 생략한 법안도 많았다.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금 부동산 시장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신속한 입법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추가 논의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이 21대 국회를 온전히 책임진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입법과 제도개혁의 최적기"라고 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투기근절과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라면 야당의 무책임과 비협조를 넘어서서 책임여당의 역할을 다하겠다"며 "7월 국회에서 부동산 입법이 완료되지 않으면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민주당의 임대차법, 세법 등의 단독 처리는 부동산 급등을 잡지 못했고 오히려 전월세 시장까지 뒤흔들어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생, 국민 명령, 위급함 등을 내세운 여당의 독주 논리가 자신들이 주장한 '일하는 국회'를 스스로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입법의 엄밀성을 배제한 채 절차를 무시한 채 입법의 양만 늘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1호 당론 법안으로 내놓은 '일하는 국회법'은 법안소위 개최 의무 횟수를 월 2회에서 월 3회로 올려놓고 상임위를 한달에 두 번이상 개최하도록 못박았지만 '단독 통과'를 감행할수록 상임위와 법안소위는 무력화되고 상임위 중심주의 취지도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는 시간이 걸리는 비효율적인 기제이고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면서 "속도를 중시하다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