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커스 | 다시 부상한 국회 보좌진들의 삶
"선거·국감 끝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간다"
제왕적 국회의원 권한 비판
언제·누구든 채용·면직 맘대로
"의원 마음에 드는 것도 평가"
국회의원 보좌진들의 삶이 우연찮게 다시 부상했다. 보좌관 출신인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7일 유튜브 채널 JTBC 인사이트에서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에 대한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의 비판에 대해 "'니들은 뭐냐 도대체. 니들은 시험으로 뽑았냐'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보좌관은 그냥 의원이 마음에 들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장으로 최근 당선된 이동윤 보좌관이 페이스북을 통해 발끈하고 나섰다. 예의를 최대한 지키면서도 하고 싶은 말들을 빼놓지 않았다. 그 중에서 의도치 않게 드러난 보좌진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보좌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제왕적 국회의원이 지배하는 국회의원 사무실의 현주소였다. 이 수석 말처럼 의원이 마음에 들면 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치는 게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생리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9명(지역 보좌진 포함)이 모여 있는 국회의원 사무실은 하나의 자영업체와 같다. 모든 규칙은 국회의원이 정한다. 불안한 고용, 불규칙한 업무시간, 제어되지 않는 갑질, 급수별 수직 구조 등 시대의 변화와 크게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부터 제기된 문제들이지만 300명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4, 5급 보좌진은 의원이 아닌 국회 사무처 사무총장과 근로계약을 맺는다. 6급부터는 근로계약서마저 없다. 주 52시간제, 직장내 괴롭힘, 심지어 성폭력도 구제할 만한 수단이 거의 없을 만큼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막강한 국회의원과 수석보좌관 등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려면 국회를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다른 국회의원 사무실로 옮겨갈 때 대부분 전에 근무했던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에게 평판을 묻기 때문이다.
◆"언제 잘릴지 불안" = 이동윤 보좌관은 "보좌진 임명권은 전적으로 국회의원에게 있다"면서 "면직권 역시 전적으로 국회의원에게 있다"고 했다. 또 "서류전형, 면접, 각 의원실별 평가, 국회 내외 평판조회 등을 거쳐 국회에 적을 두고 4급 보좌관이 되기까지 각종 평가를 반복적으로 받는다"면서 "의원님의 마음에 드는 것도 평가"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럼에도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함을 마음 한구석에 늘 달고 사는 게 바로 별정직 신분 보좌진"이라며 "선거나 국정감사가 끝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수많은 보좌진들의 애환"을 쏟아냈다.
보좌진들의 비실명 게시판인 '여의도옆 대나무숲'에는 여전히 이들이 겪는 각종 불이익과 갑질 피해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 6일엔 최근 모 의원이 신생아를 데리고 국회로 나온 것을 두고 "의원 자녀라는 이유로, 아기 수발까지 해야 하는 보좌진이 생기겠더라"며 "(의원) 자녀 여름휴가 비행기표와 숙박권, 공연과 콘서트 표 클릭질 동원에 손자 손녀 출생신고와 유치원 입학서류까지 대신 접수하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보좌진들은 인권도 없냐"며 "보좌진들도 사람이고 감정이 있는 인격체다. 최소한 인격체 대접이라도 받고 싶다"고 했다.
물론 요즘 의원 중에서는 휴가 보장, 52시간 보장, 상호 존칭 사용, 면직 예고제, 퇴근후 업무연락 안하기 등으로 보좌진의 근무여건에 신경 쓰는 의원들이 많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이같은 근로여건 문제를 제도화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
◆"보좌관도 시험 보게 하자" = 보좌진들이 '입법' '국정감사' '예산심의' 등에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 제왕적 국회의원들의 전횡이 국민들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종종 새어나오는 피감기관들에 대한 의원실 갑질이나 자신의 업무보다는 국회의원의 심기에 더 신경쓰는 경향은 국회 신뢰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국회 사무처에서도 각종 갑질, 성폭력 등을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조치하는 인권센터를 만들 생각이지만 여기서도 "국회의원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보좌진을 해고할 때 최소 3개월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매번 국회 제도개선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주 52시간 준수' '갑질 금지' '공정한 채용과 해고' '연차 휴가 보장' 등을 주장하면서도 실제 국회 안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제왕적 국회의원 권한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간의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들고 공개서명한후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엔 이에 대해 공개하는 등의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또 해외사례를 들어 국회의원 보좌진풀을 만들어 놓고 뽑아가게 해 국회의원의 재량권을 분산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앞의 여의도옆 대나무숲에는 "보좌진도 (자격)시험치면 안될까"라며 "같은 보좌진으로서 공부 안하는 보좌진, 공부안했던 보좌진, 공부안할 보좌진이 너무 많다"는 의견도 올라와 있다. 또 "보좌진의 주 업무보다 의원님들 수발드는 쪽으로 많이 가버리고 중소기업처럼 한사람이 여러 가지 업무를 하기만 하고"라며 "전문성 있는 보좌진, 발전적인 보좌진 그룹이 되려면 선발 절차에서의 공정성(을) 지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