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들여다 보니

"입양아동 미리 정해놓고 절차 진행"

2021-07-16 12:35:10 게재

입양연대회의 "입양기관은 서류작업만 대행한 꼴 … 원칙 어긋나"

'제2의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졌던 화성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의 배경에는 원칙에 맞지 않게 진행된 입양절차와 비전문적인 가정조사 및 사후관리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5월 양부에게 폭행당해 치명적인 뇌손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던 두 살짜리 피해 아동은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이달 11일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학대 양부모, 살인죄로 처벌하라' │양부로부터 폭행당해 두 달 넘게 반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두 살짜리 입양아동은 지난 11일 끝내 숨졌다. 사진은 13일 이 사건 수사를 담당한 수원지검 앞에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내용이 적힌 근조화환이 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16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입양의 공공성강화와 진실규명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입양연대회의)는 "피해아동의 입양절차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서 "부적절한 입양결연가정, 비전문적이고 부실한 가정조사 과정 등으로 인해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일명 정인이 사건) 이후 9개월 만에 또 다시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입양연대회의는 국내입양인연대 등 8개 단체가 모여 입양제도 개선과 입양당사자의 생각과 목소리를 전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피해아동의 입양절차를 지원한 A복지회의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양부모들은 자신들이 입양을 원하는 아동을 이미 정한 후 복지회에 찾아가 입양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철진 입양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예비입양부모는 먼저 입양교육과 가정조사를 통해 입양부모로 적격한지 심사하고 입양아동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마친 후 그 가정에서 가장 잘 양육할 수 있는 아동과 결연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그런데 이번 건에서 A복지회는 예비 양부모들이 입양하겠다고 정해놓은 아동을 입양시키기 위해 서류작업을 사실상 대행해준 것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 공동대표는 "이는 입양실천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비전문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예비 양부모들은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피해아동을 알게 됐고 이후 입양절차를 밟았다.

입양 전 단계에서 이뤄지는 가정조사 역시 서류작업 차원에서 진행된 정황이 발견됐다. A복지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예비 양부모는 2019년 12월 4일 처음 입양기관에 내방해서 입양신청서를 작성하고 대면 상담을 했다. 이후 2020년 5월 8일 전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적인 가정 방문을 했고, 5월 11일에는 불시에 방문해 예비 양모와 자녀들을 만났다. 약 2주 후인 5월 27일에 양친가정 조사서가 발급됐다.

입양연대회의는 "가정조사서를 보면 주로 예비입양부모가 처음 기관에 내방한 날 이루어진 대면상담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걸로 보이고, 이미 정해진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니 가정조사서에 일반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을 파악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게 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예비입양부모의 가정조사 과정은 입양아동의 특수한 욕구를 이해하고 양육하는 데 필요한 준비와 교육을 하는 과정이어야 하지만 이와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예비 양부모의 심리검사 결과 분석도 부실했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여러 우려되는 신호가 포착됐지만 간과됐다. 반 공동대표는 "입양과 출산을 같은 것으로 본다든지, 불쌍한 아이를 돌보고 싶다는 게 입양동기라든지, 입양아동의 건강과 관련된 걱정이 가장 크다든지 하는 것들은 입양가정과 입양에 관한 전문가라면 우려할 수 있는 신호"라면서 "그런데도 입양기관에서는 이를 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문제로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심리검사에서는 입양 동기가 지극히 입양부모 중심인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상담이 제공되지 못했다.

입양연대회의는 "지금까지 아동학대에 연루된 입양부모를 보면 원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아동학대는 이들의 입양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와 준비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면서 "현재 입양기관은 예비입양부모가 입양아동의 특수한 욕구를 이해하고 입양 이후 당면할 수많은 어려움에 대처해 나갈 수 있게 도우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입양아동 학대라는 예방 가능한 비극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입양절차의 부실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관련 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는 출발점"이라면서 "화성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에서 나타난 입양절차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해 아동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는 입양실천의 정착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8월 양부모에게 입양된 피해아동은 올해 4월부터 칭얼대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부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당했다. 양모는 이같은 학대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양부모는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지난 6월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2월 국회의원 139명이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양천입양아동학대사망사건과 관련해 아동학대진상조사법을 공동발의했다. 하지만 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상임위원회 소위에서 한 번 논의된 후 계류중이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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