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예방감독 컨트롤타워
"노동자 안전 1차책임은 사업주, 명확히 해야"
올해 상반기 산재사고사망 지난해보다 늘어 … 추락·끼임사고 예방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준비 총력
인터뷰 - 권기섭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안전보건본부'가 7월 1월 출범했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산업안전보건본부'로, '국' 단위의 조직을 '본부' 단위로 확대·개편했다.
권기섭 초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을 지난 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만났다. 권 본부장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산재사고는 남의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아픈 것을 오히려 드러내야 빨리 고칠 수 있듯이 사업장에셔 안전에 대한 소통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며 "좋은 방안으로 '작업 전 안전미팅'을 통해 작업 전 위험요인 숙지, 안전장비 점검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안전모 등 보호구 착용, 작업난간 설치, 개·보수작업시 운전정지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본적인 것만 지켜도 80% 이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지속적으로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폭염대비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고용부는 올여름 지방관서와 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하는 모든 지도·점검에서 '물 그늘 휴식' 등 열사병 예방수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현장지도하고 있다.
두번에 걸친 '현장점검의 날'을 통해 제조업 건설업 취약사업장 3200여곳을 대상으로 일제점검을 했다. 열사병 예방수칙과 무더위 시간(14~17시) 옥외작업 중지 등이 현장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2일부터 소규모 현장에 '쿨키트'(토시, 수건, 안전모용 차양막 등)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7월 1일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매년 800명이 넘는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경제 문화는 선진국일지 모르지만 산업안전 수준은 후진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사고, 이천물류센터 화재참사 등으로 산업안전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기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했다.
지금까지 산업안전보건 정책은 국 단위에서 감독·처벌 위주였다. 이제 실(본부) 단위에서 예방과 지원, 감독과 처벌이 균형을 갖고 완결성을 갖게 된다. 중대재해 예방과 감독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생긴 것이다.
산재 사망사고 감축과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환경 조성을 위해 조직도 본부로 확대됐다. 안전 문제에서 숫자로 성과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부분이라서 부담감도 크다.
■본부 직원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우선 산업안전감독관 직무교육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경력별로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등 실질적인 역량 제고가 이뤄지도록 했다. 신규인력의 경우 교육기간 확대, 실무사례 위주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간에 역량을 높이려고 한다.
경력직 채용을 활성화해 과장직 2자리. 국장 1자리를 공모직으로 뽑는다. 감독관도 일부는 경력직으로 뽑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와 관련해서 경찰수사연구원, 법무연수원 등 교육기관과 검찰 법원 등 유관기관을 활용해 교육 인프라를 강화하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산재사망사고 현황은?
올해 6월 기준 산재 사고사망자수는 지난해(470명)보다 4명 늘어난 474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체적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인데, 지난해 이천물류센터 대형사고가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조금 늘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재래형 재해인 추락(떨어짐)·끼임사고가 늘었다. 추락·끼임사고 사망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추락·끼임사고 예방에 주력하려 한다.
7월부터 격주로 건설현장의 추락사고, 제조업의 끼임사고 예방을 위해 '현장점검의 날'을 시행하고 있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한 불시점검으로 올 연말까지 최대한 캠페인을 벌여 성과를 내려고 한다.
■산재사망사고 예방은 감독과 처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건설기능인력의 고령화 등 산업·고용구조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원인을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가져오는 안전관리 양극화와 노동자 고령화 등이 산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원청기업 등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순위로 둔다면 산재 사망사고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본다. 일자리 구조의 전반적인 개선은 같이 풀어야 할 부분이고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양질의 기능인력 양성, 원하청 구조 개선을 통한 적정수익 및 공사기간 보장, 합법적 외국인력 활용 등 일자리 구조의 전반적 개선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꾸준히 협의하겠다.
■내년 1월 중재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가장 큰 의의는 사업주들이 산업안전을 경영의 최우선순위에 올렸다는 점이다. 8월 23일까지 입법예고한 시행령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다.
8월 중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려고 하며 설명자료도 조속히 마련해 배포할 계획이다. 또한 수사담당 감독관들이 엄정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수사 매뉴얼 준비도 같이 하고 있다.
■시행령이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한 부분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크다.
형법은 살인 등을 하지 말라는 것을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한다. 하지만 중재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라고 해놓고 그것을 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처벌하는 구조다.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위임하지 않은 범죄 구성요건을 시행령에 규정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은 업종이나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모든 것을 다 규정할 수는 없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규정하려고 하지만 어려운 부분도 있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려고 사전에 법령 설명자료와 안전보건관리체계 가이드 등을 지원할 생각이다.
■불명확한 부분을 법령이 아닌 설명자료나 지침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범죄의 구성요건 요소는 가급적 법률에 직접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법률에서 위임하지 않은 것까지 시행령에 규정할 수는 없다.
법치주의 또는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설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부분은 법의 의미와 취지에 맞게 설명해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려고 한다.
■시행령을 놓고 노사 모두 반발한다. 벌써 법 개정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계에선 주로 의무규정 등이 모호하고 포괄적이니 확실하게 해달라고 한다. 노동계는 2인 1조 작업이나 질병의 범위를 확장해달라고 요구한다. 노사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시행령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넣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된 법률이다. 법률 개정은 법이 시행된 이후에 현장에서 문제점이나 수용성 등을 고려해 검토해야 한다. 현재 시행령 입법예고기간이고 노사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반영 가능한 사항은 반영토록 하겠다.
■안전관리 여력이 부족한 중소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먼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현장 컨설팅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에서 자체적인 산재예방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1억원 미만 건설현장과 50인 미만 제조업을 대상으로 사망사고 발생 위험요인 발굴·개선을 위한 기술지도를 병행하고 있다.
둘째는 기존 클린사업장 조성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올해부터는 위험기계를 교체하고 위험공정을 개선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하는 '안전투자혁신사업'을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인증제도 이전에 제작된 위험기계기구(이동식크레인, 차량 탑재형 고소작업대 등)를 교체하고 뿌리산업의 주조·소성가공·표면처리 업종 등의 노후화된 공정 및 설비 개선에 3271억원을 지원한다.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그런데도 3년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기 때문에 50인 미만 사업체에서는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해 당장 하라고 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유예되더라도 50인 미만 사업장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처벌 대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산안법에서는 안전관리자를 처벌하는 구조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대부분 사업주와 안전관리자가 같다. 사실상 사업주가 처벌 대상이다.
7월부터 산안법 위반범죄에 대한 상향된 양형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경고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기간 동안 현장 컨설팅, 기술지도, 교육, 재정지원을 통해 스스로 준비하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산재사망자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주는 의미는 크다. 먼저 사업주, 경영책임자가 안전을 우선 수위에 놓게 했다. 이는 안전에 대해 투자할 수 있는 동기 부여로 작용하고 있다.
중대재해 수사를 통해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것이 부족하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를 개선을 요구하는 식으로 수사방향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2020년 현대건설 대우건설 태영건설에서 많은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올해도 발생해 본사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감독을 했다. 앞으로도 대기업 건설업체에 대한 본사감독을 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일종의 백신을 놓는 것으로 보면 된다. 처벌보다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의식과 관행의 변화를 유도하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다.
■여당과 이재갑 전 고용부 장관이 국회에서 2023년 1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의지를 밝혔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정부조직법 개정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를 거쳐야 한다. 전담조직을 통해 산업안전보건 업무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이전의 국 단위 조직보다 규모가 커지고 전문화된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한 만큼 본부체제에서 성과를 내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산업안전보건청이 설립되면 안전보건공단과 역할과 기능이 중복된다.
우리나라처럼 산업안전보건에 대해 정부(본부)-공단-민간재해예방기관 이렇게 3체제로 운영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3체제인 것에 비교해서 중대재해 발생수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에 따른 공단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의 논의를 떠나 당장 본부-공단-민간기관이 어떤 역할을 가지고 어떻게 안전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인지가 훨씬 고민스럽다. 본부와 공단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산업안전보건정책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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