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대한민국이 뼛속까지 선진국이기를 원한다면
1년을 연기했던 도쿄올림픽이 잘 마무리됐다. 무관중 경기였지만 충분히 뜨거웠고 코로나19 위기에서의 쉼표로 위안삼을 수 있었다. 선수들만의 잔치가 아닌 세계시민들의 잔치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 무력하게 당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너무 쓸쓸하므로.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딴 금메달수는 88서울올림픽 이후 가장 적었다고 한다. 비난이 쏟아질 만한데 그렇지 않았다.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것들을 남겨준 올림픽이었다.
금메달 0개의 태권도도 비난받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언론에서는 스포츠 개발도상국의 희망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4위로 동메달을 놓친 선수들도 큰 주목과 격려를 받았다. 높이뛰기에서 4위를 한 선수는 그 결과를 받고 너무나 기뻐했다. 여자배구는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장렬하게 패배했음에도 당당하고 씩씩했다.
아뿔싸, 내가 놓치고 있었다. 저 당당한 선수들은 선진국 대한민국의 시민이구나! 필자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10년이 지나기 전 폐허복구에 온 힘을 쏟고 있던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미국 원조 식량인 옥수수로 만든 식빵의 향기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로 기억하는 후진국의 시민으로 자라났으니 저들을 어찌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심지어 2002 월드컵 때만 해도 우리는 배가 고팠다. 그래서 선수들이 이룩한 성과로 대리만족을 해야 했다. 하지만 2021년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런 대리만족 대상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선진국이 되었고, 실제로 선수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다웠다.
우리 마음 속에는 여전히 후진국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운크타드)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이는 운크타드가 설립된 이래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세계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우리 마음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정말 선진국일까?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의 국가행복지수 조사에서 조사대상 149개국 가운데 62위였다. OECD 37개국 중 35위다. 그러고도 선진국일까? 많은 경제지표들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선진국에 걸맞은 사고와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 마음 속 깊이에는 후진국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사회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뒤섞여 있는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의 면모를 갖추면 시민의 삶의 질이 수준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가 선진국에 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필자가 매일 접하고 있는 교육과 과학의 분야에서도 답답한 일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청소년들을 입시에 매몰시켜 진취적인 시민 교육이나 창의적인 과학교육이 쉽지 않다. 초중고 교육에선 어떤 논의도 '기승전-입시'라는 공식으로 통한다. 교육현장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진정한 선진국을 정착시키는 일인데도 말이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표가 갈리는 정책이나 논의는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번번이 외면되어 왔다. 교육문제가 정확히 그 중심에 있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 백년대계에 대한 논의와 정책 제안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더 이상 없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용은 하늘로 승천을 하고 말지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그나마 이런 시대도 끝났다는데 어떻게 받아들일까. 신분상승의 사다리조차 없다는 자괴감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개천에서 노는 미꾸라지이든 돌고래든 멸치든 각자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자신감의 표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용도 개천에서 노닐 수 있는 곳, 그곳이 선진국의 모습이 아닐까.
기초과학에 통큰 투자해야 진짜 선진국
과학의 현장은 어떠한가. 최근 정부는 백신을 반도체, 배터리와 함께 3대 국가전략기술 분야로 선정해 앞으로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규모는 가히 선진국답다. 하지만 진정한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전략적 투자도 중요하지만 보다 긴 호흡으로 기초과학에 통큰 투자를 해서 먼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을 확보하는 데 진력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연구현장에서는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과감한 도전적 연구보다는 안정적인, 그래서 실패하지 않을 연구만 추구하는 것이 전체적인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바뀌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 새로운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희망을 가져본다.
올림픽에서 4위가 빛나는 이유는 엘리트 체육뿐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 체육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듯이, 과학에서도 당장 빛이 나는 가시적인 연구 성과나 노벨상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충만한 긴 호흡의 과학이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이다!
연구 문화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연구의 중심에는 대학이 있다. 대학에서는 선진국, 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들과 수많은 대학원생들이 엄청난 노력으로 (요즘 말로 '갈아 넣는다'고 한다) 함께 노력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과학기술의 업적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연구의 현장은 선진국(또는 이상적인 상황)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과학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지 불과 수십년에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도 박사후연구원 등 전문 연구원보다는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는 대학원생이 연구 중심인력이다. 그러다 보니 더 나은 연구 업적을 위해 아직도 9 to 9, 월화수목금금금을 외치는 연구실이 있다. 아니 더 많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를 외치는 후진국적 모습 아닌가. 연구실 문화부터 나아져야 한다.
연구의 현장인 대학원에서는 학문의 특성상 교수와 학생이 도제의 관계로 출발하겠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한명의 박사가 탄생할 때는 동료 관계로 매듭지어지면서 축복받아 마땅하다. 자유의 공기가 가득차도 부족한 곳이 과학의 현장인데 위계질서가 앞서면 학문적 자유도를 낮추게 된다. 모든 구성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고 과정의 공정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새로운 시대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동반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기성세대의 패러다임은 그대로 의미가 있었겠지만 시대의 소명을 다하고 나면 변화의 대상이 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런데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을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세대의 단절이 아니라 부드러운 연속선상의 변화는 불가능할까. 한국이 운크타드에서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올라가는 것에 찬성한 개도국 측에서 한국을 축복하면서 해준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개도국을 잘 이해하니 양 그룹 간의 의사소통의 다리 역할을 해달라"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과학계가 후진국형에서 선진국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필자와 같은 부류일 것이다. 그들은 후진국에서 태어나서 선진국에서 죽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외치지 말자. 대신 우리 주변에 아직도 배고픈 이가 있는지 돌아보자. 이 땅의 꼰대들이여, 도태당할 것인가, 아니면 선진국에 적응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