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농업 분야 인식전환 필요성 역설하는 허진회 교수

"대전환기 맞은 농업, 미래산업으로 떠올라"

2021-10-27 11:33:11 게재

농업은 식량주권 책임질 핵심산업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곡물 생산국들이 식량 수출을 금지할 조짐을 보이자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한 나라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식량안보'가 최대 화두가 됐다.

허진회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는 "농업 기술력과 경쟁력의 확보는 국가의 존폐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역설한다. '미래 세대의 먹을거리 산업'으로 주목받는 농업에 대해 들어봤다.
허진회 교수는 서울대에서 원예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이수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대학원 식물학 박사 취득 후 동 대학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09년부터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식물생산과학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농업생명과학 분야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중·고등학교별로 진로·진학 특강을 진행하고 있으며 '녹색과학 실험교실' 등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생명과학기술이 집약된 미래 농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사진 이의종

■ 녹색과학실험교실 등 청소년과 대면하는 활동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농학이 진부하거나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10여년 전부터 방학을 이용해 생명공학 아카데미를 진행한다. 고등학교에 희망 전공과 연계한 다양한 분야 수업과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지만 농업생명과학 관련 활동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접할 수조차 없는데 어떻게 과학기술과 농업 분야가 접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할 수 있겠나.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마련하기 어려운 고가의 특수 장치를 요구하는 실험을 진행하다 보니 예산 문제로 여러명의 학생들을 모둠으로 구성해 진행한다. 학생 개개인이 직접 체험해 보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쉽다.

■ '농업'이라면 노동집약적인 낙후된 산업으로 생각할텐데 학생들의 반응은?

'농업'이라고 하면 '모내기' '시골' '어르신'을 떠올린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런 이미지는 고착화돼 있다. 지금은 농업 분야에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다. 빅데이터와 AI가 기후변화 예측, 작황 분석과 방제, 신품종 개발에 활용된다. 첨단 IT기기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은 스마트팜 식물공장 등 기술집약적 재배에 적용된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농작물 유전체를 분석해 기능성 작물을 개발한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편집(genome editing)기술은 기존의 품종개발 패러다임을 바꾸는 첨단기술이다.

■ 농업의 미래를 보고 농대에 진학했나?

막연하게 귀동냥으로 들었던 생명공학 유전공학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선택했다. 점수에 맞춰 진학했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엔 공부가 재미 없었다. 음악이 좋아서 밴드 활동에 빠지기도 했다. 군 전역 후 본격적으로 학업에 매진했다. 다양한 원예작물의 유전학과 분자생물학 연구가 재미있고 적성에 맞았다. 종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석사 졸업 후 유학을 떠났다. 꿈을 심어줬던 논문을 쓰신 교수님과 종자 발달에 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 후생유전학으로 농업적 기여도가 큰 작물을 생산하는 연구를 소개한다면?

후생유전학은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아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산모가 임신기간에 음주나 흡연에 자주 노출이 되면 DNA 염기서열 변화 없이 폐나 간이 손상되는 특정 형질이 태아에게 나타난다. 이런 건강 상태는 계속 유전될 수 있다. 반대로 유전적인 질병을 후생유전 방식으로 조절해 세대간 전달을 막을 수도 있다. 후생유전학을 식물에 적용하면 꽃이 피는 시기나 과일이 익는 기간을 조절할 수 있다.

■ 코로나와 기후위기로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높다.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인가?

식량은 '주권'이다. 자동차나 휴대폰처럼 가격이나 성능의 비교우위를 들이댈 수 없다. 그러나 농업인구와 경작지는 계속 감소 추세다. 농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작물과 고부가가치 기능성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동시에 개발 품종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다수의 과학인재들이 농업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 청소년들에게 농업대학을 제안한다면?

구시대적인 농업의 이미지를 떨쳐버리길 바란다. 농학은 과학기술과 접목한 융합 학문이다. DNA 백신 개발과 식물의 형질 전환으로 새로운 품종 개발에 적용되는 유전자 발현의 원리는 동일하다.

농업생명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의대 약대 자연대에서 배우는 생명과학과 다르지 않다. 세계적으로 효용성을 인정받는 품종을 개발한다면 신약 개발과 맞먹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김한나 내일교육 리포터 ybbnni@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