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준비되지 않은 단계적 일상회복

2021-11-12 11:59:59 게재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관리학 교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주 평균 365명이었던 위중증 환자수는 어제(11일) 473명까지 늘어났다. 위중증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면 사망자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어렵게 첫발을 뗀 지 2주도 지나지 않았는데 조만간 비상계획을 발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수도권 병상가동률이 75% 안팎에 이르렀지만 아직 병상에 여유가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반면 질병관리청은 다음 단계로 순탄하게 넘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엇갈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시작하자마자 이전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계획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야할 일 제대로 하지 않고 국민 탓

애초부터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계획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았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려면 감염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 보건소 역학조사라는 브레이크와 함께 늘어날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 진료체계라는 또 다른 브레이크를 강화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계획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만 있고 보건소 방역인력을 늘리거나 코로나19 환자 진료체계를 강화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방역을 위해 상황분석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러 전문가들의 요구도 반영되지 않았다. 단계적 일상회복 계획에서 왜 실내체육시설과 노래방에만 백신패스를 요구하느냐는 질문에 정부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지 말고 여러 전문가와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단계적 일상회복 계획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묵살됐다. 단계적 일상회복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두차례 공청회가 열렸지만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그쳤다. 위원회 논의 결과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고 공청회에서 많은 비판과 제안이 있었지만 정부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어떤 이유로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결정으로 기존에 K-방역이 안고 있던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먼저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하지 않은 방역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단계적 일상회복에 따른 이동량 증가와 국민들의 방역 긴장감이 느슨해진 탓으로 돌린다.

정부 말대로라면 코로나19 확진자는 카페와 식당, 술집에서 늘어나야 하는데 정작 확진자는 요양병원과 요양원, 학교와 학원, 사업장에서 늘어나고 있다. 최근 위중증 환자가 빠르게 늘어난 이유는 요양병원과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같은 노인복지시설에서 집단감염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9월 10건 이내였던 이들 시설에서의 집단감염이 지난달에는 25건으로 2배 넘게 늘어났다.

요양병원과 요양원 감염은 대부분의 경우 직원이 최초 감염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설 내에서 기본적인 방역수칙도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증상이 생긴 후에 즉시 검사를 하지 않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환기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인력이 부족해 순환근무를 하면서 감염이 퍼지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 시설에서 기본적인 방역수칙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감독과 함께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최근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들에 대한 추가접종이 너무 늦게 시작되었고 작년에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수많은 집단감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 정부는 이동량 증가를 근거로 국민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고려장' 다시 재연될 조짐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포함한 노인시설의 감염관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감염관리 간호사 같은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간병인력을 늘려 체계적인 감염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만 정부 발표에서는 그 같은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노인 코로나19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3차 유행 때 코로나19 치명률은 약 3% 수준으로 그 이전에 비해 2배 가량 높아졌다. 병상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코로나19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상당수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으로 인해 노인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3차 유행 때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병상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노인환자를 코호트 격리를 핑계로 사실상 방치했다. 요양병원이 의료법 상 병원이라는 이유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할 환자를 요양병원에 그대로 둔 채 입원 대기환자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정부가 코호트 격리라는 이름으로 노인 코로나 환자를 고려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코로나 고려장'이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추가적인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격리가 필요한 노인환자를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기거나 치료가 필요한 노인환자를 종합병원에 입원시키는 일이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 집단감염 때는 입원환자의 상태가 위중해졌음에도 제때 종합병원에 입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3차 유행과 같은 코로나 고려장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추가적인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확진자와 접촉자, 비접촉자를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는 코로나 전담 요양병원을 다시 늘려야 한다. 3차 유행 시기에 정부가 지정했던 코로나 전담 요양병원 중 상당수에 대해 이후 확진자수가 줄자 지정을 해제했다고 한다. 전쟁 중에 잠시 전투가 없다고 군대를 줄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한 셈이다.

임기응변식으론 효과적 대응 어려워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 인구가 집단면역에 가까운 수준의 면역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부분이 백신접종을 받거나 감염으로 자연면역을 얻어야 한다. 1917년 스페인 독감이 3차례 유행 이후 겨울에만 유행하는 계절독감으로 변화했던 것은 코로나19에 비해 전파력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유행이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우리는 보다 지속가능한 방역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제까지처럼 사람을 쥐어짜고 임기응변으로 운영하는 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는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이제라도 보건소와 병원의 인력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제대로 된 방역체계와 감염병 진료체계를 갖춰야 한다.

코호트 격리를 핑계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아야 할 노인 환자를 요양병원에 방치하는 일이 되풀이돼서도 안된다.

요양병원은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노인이라도 다른 코로나19 환자와 마찬가지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만약 정말 병상과 인력이 부족해서 누구를 치료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정부가 임의로 우선순위를 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논의를 거쳐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