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풍력 빛과그림자
낙동정맥을 모두 풍력발전으로 덮을 것인가?
'백두대간보호법' 피해 낙동정맥 주능선에 집중 … 경북 영양군에만 풍력단지 4개, 100기 넘게 설치 예정
전봇대가 지중화된 도심을 걷다 보면 한국전력이 설치한 변압기 상자가 눈에 띈다. 이 상자에는 "전기는 국산이지만 연료는 수입입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전기에너지를 아껴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 배경화면이 이상하다. 배경화면이 하나같이 태양광과 풍력이다. 햇빛과 바람은 수입하지 않는데 왜 이런 배경을 썼을까?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이 중요하다는 의미라면 구호를 바꾸는 게 맞다. "석탄과 석유는 수입이지만 햇빛과 바람은 수입하지 않습니다"라고.
2050 탄소제로를 앞두고 태양광과 풍력이 화두다. 화석연료나 원자력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이유는 기후위기로부터 지구생태계를 지키고 사람과 자연이 같이 살기 위해서다. 탄소저감을 위해 생태계를 위협에 빠뜨려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또 하나, 재생가능에너지는 지역분산형으로 추진해 지역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기업 중심, 대도시 중심으로 추진해 도시의 대량소비를 떠받치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에 대한 폭력이고 또다른 방식의 야만이다.
2일 오전 경북 영양군 석보면 양구리 양구풍력단지. 강한 서북풍을 받고 수십대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슉! 슉! 훅!" 일본도처럼 살짝 휜 신형 블레이드(풍력발전기 날개) 3개가 번갈아 내는 저주파 소음이 가슴을 울린다. 바람은 드론을 띄울 수 없을 정도로 거세다. 사방을 둘러봐도 풍력발전기가 없는 능선이 없다.
풍력발전단지 능선부 광장에는 길이 30미터가 넘는 블레이드가 가로로 전시돼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풍력발전단지가 능선을 따라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란 안내문구가 뚜렷하다.
이 일대는 낙동정맥 본줄기다. 태백 삼수령 백두대간에서 갈라져나온 산줄기가 봉화-영양-청송-포항을 거쳐 부산 금정산까지 달려가는 곳이다. 낙동정맥의 동쪽은 동해안 수계, 서쪽은 낙동강 수계다. 백두대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그냥 '태백산맥'으로 불렀다.
태백산맥(낙동정맥 + 태백 삼수령 북쪽의 백두대간)은 우리나라에서 바람이 가장 센 지역이다. 중국대륙에 가로막혀 편서풍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태백산맥은 최적의 풍력자원을 가진 곳으로 손꼽힌다.
영양풍력단지는 겨울철 서북풍도 강한 곳이다. 서북풍을 가로막는 백두대간은 멀리 문경 예천 영주 방향에 있고 그 사이는 낙동강과 내성천 상류의 나지막한 구릉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좋은 풍력 조건 때문에 영양지역 낙동정맥 일대에는 현재 88개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섰다. 여기에 추가로 10기가 건설 중이고 또 다른 곳에 17기를 더 세울 계획이다.
◆예정지 인근 3곳에서 '산양' 촬영 = "대구환경청장실 앞 농성 7일째다. 청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이 청장이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난 것 같다."
송재웅 '영양제2풍력저지 공동대책위' 사무국장의 말이다. 송 국장은 "어제는 청사 방역 때문에 나가야 한다고 해서 결국 건물 다른 곳에서 기다리다 농성장에 돌아왔다"며 "토요일 일요일은 청사 건물이 폐쇄되고 구내식당도 안돼 미리 준비한 식사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영양제2풍력사업 공사현장 풍력발전기 10번 예정지 인근에 설치한 무인카메라 3대에 7월과 10월, 11월에 산양이 촬영됐다. 풍력발전기 6번 예정지 인근에서는 산양 배설물이 새로 확인됐다. 산양과 산양 배설물 발견 장소는 풍력발전기에서 300m 내외다.
11월 17일 주민들과 대구지방환경청, 국립생태원 한국환경공단 영양군청 평가대행업체 GS풍력이 공동으로 현장실사를 한 결과 주민들이 제출한 산양 촬영사진이 실제 장소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구지방환경청은 2020년 12월 30일 전략환경영향평가 '조건부 동의' 협의의견에서 '사업지 주변은 산양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 법정보호종이 출현하는 지역이므로 공사과정에서 법정보호종의 서식지 등이 발견될 경우, 즉시 공사를 중지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여야 함'이라고 제시했다.
국립생태원도 전략환경영향평가(재보완) 검토의견에서 '산양의 실체와 분변이 조사된 지점을 중심으로 최소 반경 375m(375m는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 작성기준을 준용) 내의 발전기 및 도로시설은 제척하는 것이 바람직함'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산양 촬영지역은 3곳, 7월 10월 11월 서로 다른 시기에 촬영됐다. 주변에는 산양이 서식하기 좋은 큰 바위들이 여러개 분포하고 있다.
◆"국내 최대 산양 밀집지역" = 산양(Naemorhedus caudatus)은 소과의 중형 포유동물로 바위절벽이 있는 험준한 산지에 서식한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걸쳐 분포했으나 무분별한 포획과 서식지 단절로 최근에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에서 주로 발견된다. 강원도의 백두대간과 한북정맥, 경상북도 북부 울진-봉화-영양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능선이 주 서식지다.
천적인 범과 표범 등이 사라져 개체수 증가 기회가 있었지만 1~2년에 한번씩 새끼를 낳는 번식 특성, 산림 훼손으로 인한 서식지 단절 등 여러가지 원인 때문에 여전히 멸종위기 상태다.
단독 혹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9~10월에 짝짓기하고 4~6월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를 낳은 어미 산양은 행동권이 급격하게 좁아지는 특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높은 산지, 겨울에는 낮은 고도의 산지를 서식지로 이용한다. 2002년 개체수 조사에서 총 690~784마리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제217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1급이다.
정수근 대구환경련 생태보전국장은 "공동 현장실사를 통해 공사중지 요건들이 사실로 확인되었는데 대구지방환경청은 명백한 공사중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산양이 실제 촬영되었는데도 배설물 유전자분석 등을 이유로 공사중지 조치를 미루는 것은 멸종위기 생물종을 지켜야 할 보호기관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그림 '산양의 작은뿔' 대표(녹색연합 공동대표)는 "산양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한북정맥 등 고지대 산지를 중심으로 서식하는 전세계적 멸종위기종"이라며 "백두대간보호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내 최대 산양 밀집지역인 낙동정맥 정상부를 풍력발전기로 뒤덮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전체 산줄기와 물줄기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다. 한반도의 산줄기는 모두가 중요한 생태축인데 백두대간 하나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