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형사책임 감면'

연내 법제화 추진에 '공권력 남용' 우려 논란 확산

2021-12-08 12:06:25 게재

경찰 "현장서 공격 받아도 적극적 대응 못해"

시민단체들 "전문성 강화, 조직 개선이 먼저"

#1. 동거남에 의해 살해된 40대 여성 A씨의 유가족은 고인이 숨지기 전 여러 차례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경찰이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결국 숨졌다며 국가와 경찰관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유가족은 소장에서 'A씨가 숨지기 닷새 전 동거남이 흉기로 위협하자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관은 가정 문제라며 아무런 조치 없이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출동 당시 A씨가 폭행당한 흔적이 없었고 본인도 동거남의 처벌을 원하지 않아 철수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경찰관 B씨의 신고처리가 정당했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2. 경찰관 C씨는 순찰을 돌다 도난번호판을 부착한 차량을 발견했다. 그는 해당 차량 운전자에게 수차례 정지명령을 했다. 하지만 운전자는 정차하지 않았고 C씨는 경고사격을 했으나 운전자가 도주하자 결국 실탄을 발사했다. 부상을 당한 운전자는 경찰관의 총기 사용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지난달 2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국회가 경찰관이 범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어도 책임을 감면하는 내용의 법안을 논의 중이다. 경찰은 적극적 현장 대응을 위해 보호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시민단체 등은 공권력 남용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전체회의에서 경찰의 책임 감면 규정이 담긴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현재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와 본회의 의결 등 입법 절차를 남겨뒀다.

개정안은 '경찰관이 범죄가 행하여지려고 하거나 행하여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을 예방하거나 진압하기 위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그 직무 수행이 불가피하고 경찰관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때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피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현장 경찰관이 긴박한 상황에서 직무 수행 중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다면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신속한 판단과 적극적인 법 집행을 위해 경직법 개정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아동·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대상 폭력이 발생해도 관련 보호 규정이 없어 소극적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직법 개정 논의는 지난해 생후 16개월 아동이 부모의 학대를 받다 사망한 일명 '정인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경찰의 사건판단 오류와 함께 민원과 소송에 대한 우려로 제대로 분리 조치에 나서지 못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또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 사건'에서도 경찰이 전자발찌를 끊은 그의 소재를 즉시 파악 못한 이유가 주거지 강제출입 법적 근거 부족으로 알려지면서 경직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근 인천 한 빌라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이 권총과 테이저건을 갖고 있었지만 피해를 막지 못하면서 국회가 면책 규정 논의를 본격화했다.

한 일선 경찰관은 "현장에서 강경 대응했다가 피의자가 다치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상황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경찰관들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관이 직무수행과정에서 소송을 당해 공무원 책임보험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해 107건이었다. 올해는 1~10월 72건에 달한다. 개별적으로 소송을 당하고도 보험 지원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실제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47%, 치명적 공격에도 '맨몸 대응' = 이런 가운데 경찰이 현장에서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물리력을 적극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한국형사정책연구 제32권 제3호에 게재된 논문 '대상자 특성이 경찰 물리력 행사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 이창용 경찰인재개발원 인권리더십센터 교수 등 연구진은 2019년 12월∼2020년 11월 서울경찰청 소속 교통외근·지역경찰의 물리력 사용 보고서 383건(전체 1322건 중 피해 불명확 사례 938건·멧돼지 대상 물리력 사용 1건 제외)을 조사했다.

이 중 대상자가 현장 경찰관이나 제3자를 상대로 흉기 등을 휘둘러 사망 또는 심각한 신체적 부상을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 공격'으로 저항한 경우는 36건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찰관이 관절 꺾기나 넘어뜨리기 등 '저위험 물리력'으로 대응한 경우가 25%(9건), 신체 일부를 미는 '접촉 통제' 사례는 22.2%(8건)에 달했다. 치명적 공격을 마주한 경찰관 2명 중 한 명은 '맨몸'으로 맞선 셈이다.

경찰봉이나 테이저건 같은 '중위험 물리력'을 사용한 경우는 52.8%(19건)로 집계됐다. 하지만 상당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급박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경찰은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을 통해 흉기 등 치명적 공격에는 권총 등 '고위험 물리력'을 사용해 제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실제 고위험 물리력을 사용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연구진은 "경찰 물리력 행사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며 "최소한의 물리력 사용조차 지탄 대상으로 만드는 언론과 내부감사 기관의 행태로 일선 경찰은 정당한 물리력 행사에 소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총기 등 장비를 사용할 경우 감찰에 소명을 해야 하고, 소송이 들어오면 경찰관 개인이 대응해야 하는 등 부담이 크다"면서 "현장 경찰들이 뒷일이 두려워서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시민"이라고 지적했다.

◆인권 침해 소지 경고 = 하지만 경직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면책 규정 법제화로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잦아지면 인권 침해 소지도 커질 것이란 우려다.

최근 시민단체들은 "국회 행안위는 직무를 유기한 경찰을 비판하거나 책임을 묻기는커녕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인권침해 가능성이 큰 경찰의 숙원 법안만 처리해줬다"며 경직법 개정안 처리 중단을 국회에 요구했다. 경찰청 인권위원인 김원규 변호사도 "현행법상 경찰의 면책규정이 과도하게 보호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법이 미비해 현장에서 경찰의 물리력 대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도 경찰의 민·형사상 면책범위는 좁은 편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형법 제20조에 '정당행위' 조항이 있어 직무수행이 적법했다면 면책이 가능하므로 전문성 강화와 조직 개선 등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경찰 중과실이 없다면 직무수행으로 경찰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무부도 "현행법으로도 직무상 행위는 면책될 수 있다"는 의견을 국회에 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경찰력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책임 감면 요건을 시행령 등에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등 제도를 제한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은주 의원(정의당)은 24일 행안위 법안소위 회의에서 "긴급한 현장 상황에서 경찰들이 징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이런 것 때문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한다"며 "그런데 면책 규정이 신설될 경우 경찰력 남용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어 "긴급한 범죄 상황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 같은 데에 담아서 경찰력 남용 우려를 시민들에게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총기 등 인명 살상기구를 사용하는 경찰과 화재진압을 하는 소방관의 민형사상 면책규정을 비교하는 일부 시각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방공무원의 경우 구조 대상을 사망 또는 부상에 이르게 하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지만 구조·구급활동 행위는 경찰관 직무와 달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성질을 가지지 않는데 단순히 비교해 경직법 개정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중과실' 여부 판단은 법원 몫 =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경찰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무조건 면책한다'는 내용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경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경찰의 법 집행 적정성을 따지는 건 법원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경직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경찰관이 형사소송을 당하는 부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총기나 테이저건, 삼단봉 등 장비를 사용하다보면 상대방 신체에 상해 등을 입힐 수 있어 당사자가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며 경찰관을 고소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결국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긴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물리력 행사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위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해를 입혔는지 △경찰관의 부주의 등 중대한 과실로 위해가 발생했는지를 놓고 법원이 책임 감면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현장 상황과 피의자들의 행위 등 여러 조건을 따져보고 경찰관의 과실이 크지 않다고 판단되면 위법성 조각사유에는 미치지 못하는 사안이라도 예외적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조계는 법원이 상당기간 무엇을 '중대한 과실'로 또는 '가벼운 과실'로 평가할지는 사안마다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법 시행 이후 여러 사건에 대한 법원 판례가 축적돼야 공통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민 62%가 총기 사용 등 경찰에게 더 강력한 권한을 주는 데 동의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시스템 더폴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3만8551명을 대상으로 인천 흉기난동 경찰 대응 논란 관련 설문을 한 결과 '진압 시 경찰의 총기 사용 권한을 좀 더 자유롭게 풀어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2.29%(2만4012명)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어 21.82%(8413명)는 과잉 진압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고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고, 15.89%(6125명)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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