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이 좁은 슬로프라 '자연 재생' 가능해"
사스래나무 등 이미 정착 단계
"스키장 슬로프의 경우 길이는 길지만 폭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죠. 또한 주변에 식물종들이 다양하면 천이(succession) 방식을 통한 복원이 가능합니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죠."
6일 정연숙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가리왕산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평창올림픽으로 심각한 훼손을 당했지만 본디 가리왕산은 생태 자원의 보고로 환경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산림청은 노랑무늬붓꽃 도깨비부채 등 희귀식물의 자생지인 가리왕산을 2008년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가리왕산 하봉(해발 1370m)에 있는 알파인 경기장은 1926억원을 들여 2017년 12월 개장했다. 당초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산림을 복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곤돌라(3.5㎞) 등 일부 시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고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입장 차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정부는 2018년 4월 협의회를 구성해 10여 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가리왕산 슬로프 복원과 곤돌라 한시 운영이라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천이 과정 통해 생태기능 성숙해져
천이는 다양한 규모의 생태계에서 시간에 따라 생물상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이다. 산불이나 태풍 등 단기간에 엄청난 식생 변화를 초래, 기존 산림 유형(식생)이 다른 유형으로 순차적으로 계승되는 걸 말한다.
천이 모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통상 다음과 같은 순으로 진행된다.
△교란으로 형성된 나지에 이주한 번식체가 발아와 성장을 통해 정착 △상호 경쟁 작용 속에서 생물 반응을 통해 입지 변화 △정착 반응 경쟁 등 순환구조로 계속 일어나면서 새로운 군집 형성 △기존 우점종(군집을 대표하는 종류)에 유리한 생물 반응에 의해 극상 또는 마지막 단계 도달.
극상이란 천이에 의해 식물의 군집 조성이 변화하다가 생태적 조건에서 장기간 안정을 지속하는 상태에 있는 군집을 말한다.
천이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갱신전략과 현저히 다른 생활사를 가진 종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도된다.
천이와 관련된 산림 수종의 중요한 속성은 △하층의 내음성(양수와 음수, 그늘에서 견디는 힘) △수명 △생장속도 △양분요구도 등이다.
천이 유발 요인이 식생 내부에 있느냐, 외부에 있느냐에 따라 각각 자발천이와 타발천이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별 방식은 실제 자연 현장에서는 명확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천이 진행 과정에서 대부분 자발적인 요인과 타발적인 요인들이 혼합돼 일어난다.
"지난해 천이 토대 마련한 곳들 확인"
4일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지난해 가리왕산에 갔을 때 보니까 이미 천이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다"며 "고산지대에 살기 적합한 사스래나무 씨앗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현장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사스래나무의 경우 척박한 땅에서도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자연적으로 복원되도록 해야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들어가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며 "만약 아직도 토양 유실 등의 우려가 있는 지역이 있다면 흙이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일정 부분 보완을 해주고 주위에서 씨앗이 날아와서 천이 토대를 마련한 곳은 더 지켜봐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보다는 천이 방식이 장기적으로 더 건강한 생태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가리왕산의 경우 대규모 공사로 몸살을 앓은 지 약 4년이 지났다.
정연숙 교수는 "지금 정착중인 식물종들이 땅을 덮으면 수분조건이나 영양분이 풍부해지면서 토양이 다시 회복된다"며 "숲이 자라서 몇년이 지나면 가을마다 낙엽이 떨어지고 그 밑이 축축해지면서 썩어서 양분이 생긴다. 이후 내음성을 가진 종들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원래 숲 생태계가 살아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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