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1.5℃ 상승이 초래할 식량위기

2022-06-10 12:02:20 게재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농특위 탄소중립위원회 위원

인도는 지난 5월 49℃라는 역사적인 폭염을 겪었다. 이웃 파키스탄은 51℃까지 올랐다. 영국 기상청은 이런 기록적인 폭염이 예전에는 300년마다 한번씩 찾아왔지만 지금은 3년으로 주기가 짧아졌다고 분석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미국 중서부 곡창지대의 가뭄은 1200년래 최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유럽에서는 2018~2020년 사이 역사상 최악의 가뭄을 지났다. 폭염과 가뭄이 심해질수록 산불 발생이 늘어난다. 미국 터키 호주,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전세계 산불 발생면적과 기간 역시 매년 기록을 갱신한다.

모두가 기상 이변이라고, 기후가 변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기후가 변했다는 건 누구의 관점일까? 지금의 20대에게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들에게 기후는 원래 이랬다. 그러니 기후가 변했다는 주장은 고리타분하게 들리지 않을까? 예전이 정상이고 지금이 비정상이라는 주장 역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탄소중립? 어렵기는 하겠지만 달성할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2050년 탄소중립의 진짜 의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2050년 전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다시 1990년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2050년 탄소중립은 기후파국을 불러올지도 모를 2℃의 세계(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2℃ 상승한 세계)만은 막아야 한다는 인류의 염원이다. 그 후에도 최소 50년은 1.5℃의 세계를 견뎌내야 한다. 1.5℃와 2℃ 사이, 0.5℃ 차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걸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인 IPCC는 수천쪽의 보고서를 통해 2℃의 세계를 기술하고 있다. 조개 등 어패류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산호초 지대는 황폐화되고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수십억명의 단백질 공급원이 사라진다. 해안가 평야지대는 염해지로 변하고 극심한 가뭄이 더 빈번하게 닥치면서 식량위기에 처한 인구도 수십억명으로 늘어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티핑포인트를 지나 지구의 기후가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폭주하게 된다는 경고도 있다.

현재는 1.1℃의 세계다. 그럼 1.1℃와 1.5℃, 0.4℃는 어떤 차이를 만들까? 우리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7년 후에 마주할 세계다. 획기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면 최대 2040년까지 늦출 수는 있다. 그렇지만 1.5℃의 세계를 금세기 말까지 견뎌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더 빈번해지고 강해지는 가뭄과 산불, 수많은 생물의 멸종, 더 강한 태풍과 더 덥고 길어진 여름, 그리고 더 빈번한 식량위기를 겪게 된다. 식량난민과 식량전쟁이 취약한 국가부터 일상화된다. 이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미래다.

2050년 전세계가 탄소중립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면 화석연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재생에너지의 시대가 열렸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자연생태계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살을 앓게 된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건조지대, 열대 및 아열대 기후대에서는 농산물의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면서 상시적인 식량위기에 노출된다. 결국 1.5℃의 세계를 살아가는 힘은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식량위기에 처한 국가는 사회불안과 생태계 붕괴의 위기를 겪으면서 회복력을 상실해간다.

2010년 아랍에서부터 시작된 재스민혁명은 지난 10년간 불안정한 세계를 형성했고, 다시 시작된 중동과 아프리카의 식량가격 폭등이 세계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전세계는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미국 농무성의 보고서는 올해 전세계적으로 식량재고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의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 3~5년마다 돌아오는 호주의 가뭄이 내년에 동시에 발생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뭇 두렵다. 비가 제때 내린다면 우크라이나전쟁과 세기적인 가뭄으로 초래된 식량위기는 해소되겠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극심한 기상재해까지 씻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박사는 "우리나라는 산업화된 국가 중 가장 먼저 식량위기를 맞게 될 국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식량은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에서 대부분 들어온다. 유럽과 동유럽은 아프리카의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도 힘에 부치고, IPCC는 남미와 호주의 가뭄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 예측한다. 미국 역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뭄에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겨우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 초입에 들어선 세계의 풍경이다.

자급률과 식량안보 순위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곡물(쌀 옥수수 밀 콩)은 대략 2300만톤이다. 이중 80%는 해외에서 들여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라고 한다. 쌀은 평균 360만톤을 생산한다. 1인당 쌀 소비량이 극적으로 줄어 쌀은 자급한다. 혹자는 자급률을 높여서 식량위기에 대비하자고 한다. 이 의견에 토를 달 수는 없다.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할 방법이 마뜩하지 않다. 농경지 면적은 매년 줄어들고, 농장주의 평균연령은 이미 68세가 넘었다. 40세 이하 청년 농부는 1% 남짓에 불과하다. 농가의 규모는 평균 1.1헥타르까지 줄어들었다. 수리답의 비율은 80%이지만 평년 정도의 가뭄에도 1/4은 피해를 받고, 10년에 한번 발생할 정도의 가뭄이면 거의 절반으로 한발 피해가 늘어난다.

1990년대 이후 농업 시설에 대한 유의미한 투자가 없었던 게 지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을까? 이나마 유지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투자가 필요할지를 고민하는 게 더 현실적인 대책으로 생각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식량의 가용성, 경제성, 품질과 안전성, 자연자원과 회복력 등 4개 지표에 대한 점수를 종합해 각국의 식량안보 순위를 매겼다. 우리나라의 종합 순위는 32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축에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식량안보 순위를 자급률을 높이자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더러 인용한다.

그런데 세부지표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인식과 이 순위가 말하는 게 같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인식은 식량공급이 부족해서 순위가 낮을 것 같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식량의 가용성 부문에서 가장 후한 17위를 기록했다. 세계 평균보다 월등히 좋다는 뜻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그중에서 가장 뒤처지는 게 식량안보 정책과 전담 기관이 없을 뿐 아니라 너무 과도하게 식량자급률을 높게 잡고 달성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식량안보 순위를 높이고 싶으면 식량자급률 목표를 달성가능한 수준으로 낮춰 현실성 있게 하고, 식량안보 전담 부서를 만들고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해나가야 한다는 걸 조언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물론 우리가 그럴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그 외 다른 지표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인식의 오류와 대응이 문제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2050년 탄소중립은 국가의 존망을 건 생존경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 중심에는 식량안보가 있다. 연못의 물을 퍼서 물고기를 잡고 산에 불을 질러 산짐승을 잡으면 식량수급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물론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 1.5℃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 인류는 농산물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숲을 복원하고 생물다양성을 늘려야 하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한다.

물론 그전에 탄소중립부터 달성해야 이런 논의도 의미가 있다. 우리의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1.5℃ 시대를 견딜 수 있도록 농업 기반을 정비하고 해외 식량공급망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야 한다. 무엇보다 식량안보를 국가의 우선 어젠다로 설정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