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재생e | ③ 전력계통 안전성

송전망 확보없이 재생에너지만 늘리면 대규모 정전 우려

2022-06-13 10:47:39 게재

제주도 출력제한, 2015년 3건에서 2021년 65건 급증

정부 '선 전력망, 후 발전'으로 패러다임 전환 추진

제주도는 2012년 '2030 카본 프리 아일랜드'(Carbon-Free Island; CFI 2030)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100%로 '탄소 제로 섬'을 만들겠다는 선도적인 에너지전환 계획이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4085메가와트(MW)를 보급하고, 전기차로 도내 운행차량을 대체(37만7000대)하며, 에너지 융·복합 신산업을 선도해 직간접 일자리 7만4000개를 창출하겠다는 전략도 마련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제주도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재생에너지 출력제한'이란 복병을 만난 것이다.

출력제한이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과도하게 많은 시점에 송배전망사업자가 재생에너지 발전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전선로와 변전소를 거쳐 배전선로를 통해 고객에게 공급된다.


◆출력제한, 제주도에 한정된 문제 아냐 = 13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제주도내 출력제한 횟수는 2015년 3건에서 2019년 46건, 2020년 77건, 2021년 65건 등 급증했다. 2021년 횟수가 전년대비 소폭 감소한 건 해저연계선을 통해 남은 전력을 육지로 전송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증가로 전력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봄·가을철에 태양광·풍력발전의 출력제한이 많았다.

제주에너지공사는 더 충격적인 '재생에너지 출력제약 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2030년 제주도 신재생에너지 출력제약이 약 179일(4294시간)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출력제약 예상 발전량은 2078기가와트시(GWh)로, 2030년 제주도 신재생에너지 최대 발전량 5164GWh의 40.2% 규모다.

이런 현상은 비단 제주도에 한정된 일이 아니다. 향후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다보면 전국 어디에서라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문제다.

2021년 9월말 기준 송·배전망에 접속대기 중인 재생에너지는 김제변전소 63MW 등 전국적으로 3GW에 이른다. 이에 정부는 전력계통 혁신방안을 통해 2022년말까지 이중 2.2GW을 계통에 연계할 방침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계통안정이 무너지면 전기품질이 저하되거나,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송전혼잡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와 송전선로 구축의 시간차이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태양광의 경우 발전허가부터 준공까지 2~3년 소요된다"며 "하지만 송전·배전설비는 계획에서부터 구축완료시까지 최소 6년, 765kV 송전선로는 평균 10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송전선로·배전망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만 늘릴 경우 전력계통이 불안정해져 출력제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전력계통의 세가지 특징 = 한국전력에 따르면 전국의 재생에너지발전 계통 접속완료율(용량기준)은 2018년 47%, 2019년 58%, 2020년 76%, 2021년 84%로 대폭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지역별로는 특정지역의 설비편중으로 전남 30%, 전북 16%, 강원 15%에 그치는 등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도 일조량이 큰 남부지역(호남·영남)과 바람세기가 좋은 강원에 재생에너지 설비가 집중될 것으로 보여, 수도권으로 원활한 송전을 위해서는 전력계통 유연성 확보가 관건이다.

특히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향후 태양광 300~400GW, 풍력 100~150GW 설치가 예상되는 만큼 전력계통 안정성과 운영 방식의 획기적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송배전 적극 투자와 지역 중심의 배전 운영 최적화가 필요하다. 현재처럼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올려 소비하는 방식을 유지할 경우 과도한 비용과 주민수용성 확보가 난제다.

우리나라 전력계통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북미나 유럽처럼 국가들끼리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다. 따라서 남은 전기나 부족한 전기를 인근 국가와 거래할 수 없다.

둘째 일부 직류(DC) 송전선로를 제외한 대부분 전력망은 교류설비로 구성됐다. 동일한 전력을 보내는 경우 교류방식은 송전손실이 크다.

교류는 원거리 송전시 송전용량이 감소해 고압으로 전송해야 하며, 전력흐름 제어가 불가능하다.

직류 전압은 교류 전압의 최대 값 대비 크기가 70%에 불과해 각 기기에 설치돼 있는 절연체 수량 및 철탑 높이를 낮출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고압직류송전(HVDC)은 여러 장점에도 제어기기 오작동 등 현재 크고 작은 고장이 많이 발생해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애로를 겪고 있다.

셋째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화력 등 발전소는 수도권 외 지역에 입지한 반면 전력소비는 수도권 비중이 절대적으로 많다. 다시 말해 지방에서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으로 가져오는 형태다.

우리나라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력수급 불균형이 심하다. 그러다보니 많은 송·배전망이 필요하고, 구축비용은 물론 설치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순환적 딜레마 문제 상존 =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따라 장기간 소요되는 송전망 건설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78조원 규모 투자를 추진, '선(先) 전력망, 후(後)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와 한국전력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과 전력망 보강기간의 격차 해소를 위해 예측기반의 선제적 보강을 추진 중이지만, '순환적 딜레마'(Circular Dilemma) 문제가 상존한다.

한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사업자의 경우 전력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에 앞서 접속지연·출력제어 회피를 위한 전력망 불확실성 해소를 요구한다"며 "반면 송·배전사업자는 선제적 망 보강을 위해 재생에너지사업 이행의 불확실성 해결을 먼저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처럼 두 사업자간 상호 의존적인 특성으로 발생하는 순환적 딜레마를 해소하려면 상대방 사업 이행계획을 구체화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계획입지 절차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부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원격 제어가 가능한 통합관제시스템을 2025년까지 구축해 '선 접속, 후 제어' 시스템을 정착시킬 방침이다. 전력수급 불균형시 출력제어 원칙과 대상에 대한 기준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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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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