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횡령사고와 내부회계관리제도

2022-07-26 11:42:45 게재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

기업의 횡령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 계양전기 LG유플러스 우리은행 아모레퍼시픽 KB저축은행 등 횡령사건은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횡령 수법도 은행잔고증명서 위조, 거래처 장부금액 조작, 공문 위조 등 치밀하고 대담해진다. 횡령 기간도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6년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횡령범죄는 주주가치 하락으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의 평판을 훼손해 장기적으로 고객 및 거래처의 이탈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내부회계관리제도 강화로 이미 존재하던 횡령 발견 늘어

횡령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함께 주목을 받는 것이 내부회계관리제도이다. 2019년 회계개혁을 통해 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가 강화되었음에도 계속된 횡령사건의 발생은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횡령은 조직 내부자와 외부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업무상 부정의 한 유형이다. 내부통제제도의 일부인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회사 재무제표가 회계기준에 따라 적절하게 작성·공시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 확신을 제공하며, 회사 자산을 보호하고 부정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2019년 외부감사법 개정을 통해 상장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인증수준이 기존의 '검토'에서 '감사'로 상향되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과 운영을 위해서 기업은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규제강화는 회계처리 비용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규제효과는 자본시장의 신뢰성을 강화하는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현재 드러난 횡령사건도 강화된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 및 감사과정에서 발견된 부분이 적지 않다. 즉 이미 존재하던 횡령이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과 감사과정에서 더 많이 적발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기업들의 회계감사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해 자산규모 1000억원 미만의 중소 상장기업에 대한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이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4~5명의 전담인력이 필요하나, 중소 상장기업이 현실적으로 이러한 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일부 기업들은 경영진의 배임 및 횡령으로 거래정지 후 상장실질심사를 받고 있다.

오히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소액의 횡령사건이더라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부담경감 목적으로 중소 상장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를 면제하게 되면 자본시장에서 해당 기업의 재무보고 신뢰도가 하락해 오히려 자본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최소한의 내부회계관리제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를 면제받더라도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감사를 받는 경우 향후 실제 부정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제재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경영자가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적절히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미구축 사유를 자발적으로 공시하도록 의무화해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경영자의 판단이 타당한지 평가하도록 할 수도 있다.

정부·기업·대학 등 이해관계자들이 신뢰성 제고를 위해 적극 협력해야

기업은 부족한 내부회계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과 협력해 기존 인력에 대한 재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회계업무에 대한 디지털전환을 확대해 적은 인력으로도 내부회계관리제도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회계제도는 자본시장의 인프라다. 이러한 노력과 비용을 기업이 혼자 감당할 수 없다. 정부 기업 대학 등 이해관계자들이 자본시장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