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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마약류 사범 검거, 5년 연속 1만명대 기록

2022-09-08 11:11:38 게재

'던지기 수법' 이용한 비대면 거래 증가 … 학계, 드러나지 않은 중독자 20배 이상 추산

우리나라는 과거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마약 오염국'으로 전락했다. 유엔은 마약류 사범이 10만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하지만, 2016년 이후 이 기준을 넘어섰다. 특히 마약류사범의 연령이 낮아져 20대는 물론 10대 중독자까지 증가하고 있다. 내일신문은 3회에 걸쳐 사회 곳곳에 소리 없이 스며들고 있는 마약의 폐해와 해결책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화장품에 은닉한 '환각파티용 신종 마약' | 부산본부세관은 동남아 국가로부터 마약류를 밀수입한 혐의로 외국인 노동자 3명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8월 31일 밝혔다. 사진은 헤어 트리트먼트에 숨겨 반입한 신종 마약류. 사진 부산본부세관 제공


국내 수사기관에 의해 적발된 마약류사범은 지난 5년간 매년 1만명이 넘었다. 특히 10·20대 마약사범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은 강력한 단속 등의 영향으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만명 아래로 떨어졌다가 2015년부터 다시 증가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도 1만4214명, 2017년 1만4123명, 2018년도 1만2613명, 2019년도 1만6044명, 2020년도 1만8050명으로 증가했다가 지난해 1만6153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마약류 사범은 8575명이다.

최근 5년간 10·20대의 마약류 사범 증가폭이 가장 컸다. 10대의 경우 2017년 119명으로 전체의 0.8%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2.8%(450명)를 차지할 정도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또 20대는 같은 기간 2112명(15.0%)에서 5077명(31.4%)으로 크게 늘었다.

◆구매는 쉬워지고, 추적은 어려워져 = 경찰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마약 사범이 급증한 가장 큰 이유로 과거보다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판매상들은 사정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둔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나 다크웹 등을 활용한 인터넷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접속을 위해서는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하는 다크웹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속자나 서버를 확인하기 쉽지 않아 국제공조 없이는 추적도 쉽지 않다.

마약류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유흥업소 종사자, 연예인, 재벌 자녀 등 특정인들로 대표되던 마약이 학생, 주부 심지어 공무원까지 우리 사회 곳곳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 중 학생은 494명(전체 마약류 사범의 3.1%)으로, 2017년(105명, 0.7%)보다 2.4%p 증가했다. 회사원은 1010명(6.3%), 가정주부는 195명(1.2%)으로 각각 4년 전보다 2.6%p, 0.1%p씩 늘어났다.

박남규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은 "과거에는 제조자와 판매자, 판매자와 투약자들이 만나서 마약을 주고받았지만 이제 인터넷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손쉽게 거래가 이뤄진 지 오래됐다"면서 "텔레그램 같은 곳에선 '아이스' '빙두' '얼음' 등 마약을 의미하는 은어를 활용해 광고까지 하고 전자지갑에 가상화폐를 보내면 '던지기'라고 미리 약속한 곳에 마약을 두고 찾아가는 식으로 거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는 인터넷 '헬퍼' 사이트에서 사람을 구해 마약을 운반시킨 사건도 있었다"면서 "그저 아르바이트 삼아 택배를 대신 수령해 전달했을 뿐인데 마약 범죄와 얽히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경찰이 검거한 인터넷을 통한 마약류 사범은 2545명으로 2018년보다 1029명 늘어났다. 다크웹·가상통화를 이용한 경우는 832명으로, 같은 기간 747명 증가했다. 올해 6월 기준 인터넷 사범은 1512명, 다크웹·가상통화 사범은 547명이었다. 이처럼 마약유통의 중심이 사이버공간으로 점차 옮겨가면서 인터넷에 익숙한 10·20대를 중심으로 평범한 일반인들이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인터넷·물류망 갖춰진 한국 = 전문가들은 여기에 국제택배와 우편 등 물류시스템이 발달한 한국은 진화하는 마약범죄에 취약한 환경이라고 지적한다. 구매자가 다크웹이나 SNS 등 인터넷으로 해외 판매자에게 주문하면 마약이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로 집으로 보내진다. 결제는 추적이 쉽지 않은 가상통화로 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마약도 이른바 '직구'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정기관이 적발한 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약범죄는 다른 범죄들과 달리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한 사건이 훨씬 많은 대표적인 암수범죄이다. 마약범죄는 그 특성상 밀수, 판매, 투약사범 모두 서로 공범관계로 얽혀있어서 범행이 은밀하고 자진신고율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 마약범죄의 평균 암수율(검거 대비 실제 발생범죄 수를 계산하는 배수)을 28.57배로 산정하기도 한다. 사정당국에 의해 드러난 범죄에 암수율을 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로 밀수되는 마약류의 양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엔 662건의 단속에서 214㎏의 마약류를 단속한 반면 올해는 372건을 단속해 238㎏ 상당을 압수했다. 단속 건수는 44% 감소했지만 압수한 마약류 중량은 11% 늘어났다.

이런 노력에도 적발한 수량보다 유입된 마약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박 팀장은 "우리나라 세관에서 첨단장비와 시스템을 갖추고 많은 양의 마약을 적발하지만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어렵다"면서 "얇게 포장해 옷가지에 숨긴다든지, 부품에 넣어 들여오는 등 갈수록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 대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해외에서 제조하는 것이 더 저렴해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미국 달러 기준으로 메트암페타민(일명 필로폰) 1g당 거래 가격은 한국이 450달러(한화 약 59만원)인데 비해 미국은 44달러(약 5만8000원), 태국은 13달러(약 1만7000원)에 그쳤다.

곽대경 교수(동국대 경찰학과)는 "마약 조직이 국제택배 등을 통해 마약류를 국내로 밀반입하면 점조직 형태로 아는 사람 중심으로 은밀하게 유통된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수사기관을 비롯해 외부에서 이를 인지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합법화 국가 증가한 대마 유입 증가 = 사법당국은 최근 대마사범 증가세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대마사범은 3777명으로 전년(3212명) 대비 17.6% 증가했다. 서구권 국가들의 대마 합법화와 해외 유학생의 대마 접촉 증가 등 영향으로 최근 5년간 163.2% 늘었다. 전체 적발량의 58%가 합법화 지역인 북미지역으로부터 유입됐다. 단, 라오스 등 아시아 지역에서 유입된 적발량이 전년 동기대비 184% 증가했다. 대마류 중 주요 밀수 품목은 '대마초'이며 대마 추출 성분이 함유된 '대마 수지' '대마 오일'을 해외직구(우편·특송 등)로 밀반입하는 사례 또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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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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