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지도실장

"단속이 능사 아냐 … 중독자 재활에 관심을"

2022-09-16 10:32:45 게재

"치료 없는 처벌, 결국 다시 마약으로"

"재활 강화 없인 마약 범죄 못 줄여"

"실패해도 재시도할 수 있도록 지원"

"단속이 능사가 아닙니다.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끊고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재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지도실장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마약사범을 잡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중독을 치유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만 마약범죄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25년간 마약 중독자로 살았던 박 실장은 2002년 약을 끊고 20년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중독 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 6일 박 실장을 만나 우리나라 마약 실태와 대책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1992년 설립 이후 마약 예방과 중독 치료, 상담, 재활 사업 등을 해왔다. 특히 중독자의 재활을 위해 심리·회복 상담과 12단계의 치유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검찰이 마약 초범 등을 대상으로 하는 기소유예 교육도 담당한다.

재활지도실장의 주된 역할 중 하나가 본부를 찾아오는 마약 중독자들을 상대로 초기 상담을 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겐 중독 전문병원을 안내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이들에겐 심리 상담을 제공하는 등 대상자별로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해주고 있다.

■재활지도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5년간 마약 중독자로 살아왔다. 몇 번을 끊으려 해도 잘 안되더라.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본부에서 운영하는 송천 쉼터였다. 거기서 마약을 끊고 재활지도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일반인보다 경험자가 마약 중독자를 선도하고 사회에 복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게 인연이 돼서 20년째 재활지도 일을 하고 있다.

■당시와 비교하면 요즘 마약 실태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서로 만나서 약을 주고받던 과거에는 마약을 하는 이들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일상 곳곳에 마약이 퍼져있다. 인터넷이나 SNS 등으로 마약을 구매할 뿐 아니라 마약하는 방법, 주사기 사용법과 양까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본부를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 과거에는 이른바 '불량'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회사원, 대학생, 주부 등 멀쩡한 분들이 많다. 엘리트 집안 자녀들도 있다.

■최근에 마약하는 이들이 많이 늘었나.

마약이 일상으로 확산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10여년 전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고 할 때에도 개인적으로는 이미 마약중독자가 100만명은 넘을 것이라고 봤다. 검거된 마약 사범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019년 '버닝썬' 사건이 터지면서 클럽 등에서의 마약 복용 문제가 떠올랐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최근 마약 문제가 더 심각해진 점이 있다면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 확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아무래도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게 된 환경 요인이 가장 크다. 또 우리나라가 사실상 다문화국가가 되면서 중국, 동남아국가 등 비교적 마약에 관대한 외국인들이 국내로 들어와 마약이 확산된 측면도 있다고 본다.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마약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데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마약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피폐하게 하는 범죄이니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마약 제조와 판매 행위에 대해선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단속과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마약 중독자들이 약을 끊고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재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마약 중독자를 치료나 치유의 대상이 아닌 처벌의 대상으로만 본다. 마약 중독자들을 검거해 교도소에 보낼 생각만 하지 처벌 받은 이후에 약을 끊고 사회에 복귀하는 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한번 마약 중독자로 낙인 찍히면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제대로 생활할 수 없으니 결국 또 다시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아무리 검거를 많이 하면 뭐하나. 다시 마약에 빠져드는데.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마약 범죄를 줄일 수 없다.

■재활을 위한 지원이 많이 부족한가.

정책적인 면도 그렇고 예산 지원도 많이 부족하다. 단적으로 보건복지부가 마약 중독자를 위해 지정한 치료보호병원이 21곳이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한 두 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예산 지원이 부족한 탓이다.

무엇보다 정부나 정치권이 마약 중독자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마약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선 공동체에서 규칙적인 생활하면서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마약 중독자를 위한 입소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중독자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다보면 오히려 마약의 온상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본부에서도 입소시설을 운영했으나 마약 투약 사건으로 인해 폐지되고 낮 프로그램만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하루 중 중독자들이 가장 힘들어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저녁 때다. 주로 저녁에 투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입소시설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가기가 더 쉽다.

마약 중독자가 약을 끊으면 우울증을 겪는 등 정신적, 심리적으로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다. 그만큼 단번에 마약을 끊기란 쉽지 않다. 단약에 성공한 이들도 몇 번의 실패를 거친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마약에 중독되면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삶까지 무너진다. 중독자 한 명을 치유하는 것은 3~4명의 가족의 삶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갖고 정부가 마약 중독자 재활에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해줬으면 한다.

["소리 없이 다가온 '마약' " 연재기사]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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