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신당동 사건 전주환에 '위험성 없다'

2022-09-27 11:12:34 게재

위험성 체크리스크 허술 … 두번째 고소에도 추가 점검 없어

경찰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에 대해 지난해 10월 "위험성 없음 또는 낮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위험성 체크 리스트' 작성과정에서 전주환의 범행 가능성을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성만 의원(더불어민주당·인천 부평구갑)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해 확인됐다.

'그곳에선 편히 쉬세요 |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 진술을 청취하여 체크한 결과 위험성이 높지 않다"라고 판단했다.

신당역 사건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7일 불법 촬영과 협박 혐의로 전주환을 경찰에 처음 고소하고 신변 보호 요청을 했다. 당시 피해자는 2019년부터 전주환으로부터 350여 차례에 걸쳐 '만나달라'는 등의 일방적인 연락을 받고 불법 촬영물을 빌미로 협박까지 받던 중이었다.

고소한 다음날 경찰은 피해자를 상대로 '위험성 체크 리스트'를 작성했다. 피해자 진술을 토대로 얼마나 위험한지 평가한 것이다. 그 결과 경찰은 '위험성 없음 또는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당시 평가기준에서 위험성 평가 3단계 중 가장 낮은 단계다.

체크리스트 지침을 보면 우선 피해자나 가족 구성원이 가해자로부터 폭행과 협박, 신체 제한, 성폭력을 당한 사실이 있는지 묻는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고, 해당돼도 반복될 우려가 낮을 땐 '위험성 없음 또는 낮음'으로 분류된다.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는 본인과 가족이 당시까지는 전주환으로부터 물리적 위협을 받지 않아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단 한 차례의 체크 리스트 작성만으로 범죄 위험을 판단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통상 체크리스트는 처음 고소 후 한 차례 작성되고 이후 추가 조사 등으로 갱신하거나 업데이트 되지 않는다. 특히 신당동 사건은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피해자가 스토킹으로 추가 고발하는 등 중대한 변화가 있음에도 추가 체크가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 갱신하거나 추가적인 고발·고소가 있을 때 갱신하라는 지시나 지침은 없다.

이 의원은 "가해자의 심리 상태가 언제나 동일한 것이 아니고, 변화할 수 있고 또 증폭될 수 있다"며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는 수시로 체크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고 평했다. 이어 이 의원은 "경찰이 제대로 된 체크리스트와 매뉴얼에 따라 현장을 정확히 판단하는 게 우선"이라며 "판단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직권으로 취해질 필요가 있는 조치는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체크리스트는 지난해 7월 '제주 중학생 피살 사건'의 영향으로 같은해 10월 14일 개정·보완됐다. 개정된 체크리스트도 범죄예방 효과의 실효성은 여전히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신당동 사건 피해자는 이마저도 적용받지 못한 것이다.

한편, 경찰은 기존 '위험성 체크리스트'로는 실제 위험도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신당역 사건 발생 하루 전인 지난 13일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는 범죄 피해 우려가 있는 피해자에게 순찰강화, 임시숙소 제공, 신변경호, 위치추적장치 대여 등을 지원해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경찰은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이용해 피해자의 위험도를 '매우 높음' '높음' '보통' '없음' 등 4단계로 나눠 등급별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위험 등급을 매기는데 경찰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하는 등 객관성이 떨어져 위험도에 따른 실질적 보호조치에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연구용역을 통해 현행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항목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하고 필요하면 수정 보완할 예정이다. 특히 가해자의 공격성, 범죄경력, 재범 가능성 등 위험요인을 평가해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항목표를 개발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항목별 세부 내용 점수 부여 기준과 각 항목의 중요도에 따른 점수 차등화 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고위험군 안전조치 대상자 보호를 위한 민간경비업체 밀착 경호 등 위험도별 보호 지원 기준도 제시한다.

경찰은 연내 연구용역을 마치고 1~2개월간 시범 추진을 거쳐 내년부터는 현장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김형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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