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의 과학산책

오펜하이머와 '악마의 시'

2022-11-08 11:34:20 게재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더 메디컬 편집국장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미국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였던 그는 나중에 삶에 영향을 준 책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악마의 시'(보들레르)를 맨 먼저 꼽았다. '악마의 시'를 열면 '독자에게'라는 시가 맨 앞에 나온다. "어리석음 과오 죄악 인색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 우리의 몸을 들볶는다…."

오펜하이머가 이끈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 '맨해튼 프로젝트'는 뉴멕시코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진행됐다. 그는 1945년 자신이 만든 플루토늄 원자폭탄과 우라늄 원자폭탄이 일본의 두 도시에 떨어지고 전쟁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1945년 10월 16일 로스앨러모스에서 가진 이임식에서 그는 "오늘날의 이 자부심은 깊은 우려와 함께 해야 합니다. 서로 다투는 세력이 원자폭탄을 입수하려는 날이 오면 인류는 로스앨러모스와 히로시마를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오펜하이머는 대통령 트루먼을 만나서는 "우리는 손에 피를 묻혔다"라고 말했다. 트루먼은 "괜찮아요. 씻으면 됩니다"라고 대꾸했다. 그렇다고 트루먼이 단순한 캐릭터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일본에 3번째 원자폭탄 투하를 거부한 게 그런 단서 중 하나다.

로스앨러모스연구소는 전쟁 막바지에 세번째 핵폭탄에 들어갈 플루토늄 덩어리를 만들었고, 이를 조립하라고 사이판 섬 바로 남쪽의 티니언 섬으로 보낸 바 있다. 티니언섬은 첫번째 원폭이 보관되다가 비행기에 실어 히로시마로 보낸 곳이다. 트루먼은 10만명을 다시 죽일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며 세번째 폭탄은 떨어뜨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핵군축과 수소폭탄개발 반대하면서 추락

오펜하이머는 종전 후 LA의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로 갔다. 하지만 학교 연구실에 머물기보다는 정부 일을 많이 맡았다. 그는 1947년부터 미국 원자력위원회에 과학기술자문을 하는 위원회(GAC) 위원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동부 뉴저지에 있는 고등연구원(IAS) 원장을 맡았다. IAS는 당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교수로 머물고 있었던 곳이다. 오펜하이머는 세계 최고 이론물리학자의 보스로 일한 것이다.

전쟁 전 무명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전쟁 뒤 대중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1948년 11월 8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은 오펜하이머를 표지 인물로 올리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 물리학회 회장이기도 했다. 경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오펜하이머의 추락은 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미국 무기과학기술 분야에 큰 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시작됐다. 오펜하이머는 핵군축에 찬성하며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했다. 미국 정부내 강경파는 소련과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핵무장을 반대하는 오펜하이머를 제거하기로 했다.

이 일에 앞장 선 인물은 루이스 스트로스다. 스트로스는 1953년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오펜하이머를 GAC 위원장 자리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빨갱이 사냥꾼인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를 부추겨 오펜하이머를 조사하라고 했다. 스트로스 위원장은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해도 러시아가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전이 끝난 다음해인 1954년 3월 1일 수소폭탄을 남태평양 비키니 섬에서 터뜨렸다. 매카시는 같은해 4월 정부 내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의 수소폭탄 연구를 18개월 지연시켰다고 주장했고, 미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같은 달 워싱턴에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비공개 청문회가 시작됐다.

4월 14일 청문회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이었다.(오펜하이머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는 반대측의 가차없는 심문에 무기력했고, "내가 멍청이였다"라는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이후 그는 정관계에서 쫓겨나 과학계의 순교자가 됐다.

메카시의 희생양 된 최고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이야기는 내년에 미국에서 영화로 나온다. '인터스텔라' '덩케르크'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의 부상과 몰락을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하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한다"는 모순적인 말을 남긴 오펜하이머다. 세상살이는 간단하지 않다. '쾌도난마'와 같은 해법은 쉽게 찾기 힘들다. 북핵 위기나,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들 삶은 이해할 수 없어 힘든 듯하다. 보들레르의 시집을 오랜만에 끄집어내어 다시 읽어본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