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소부장으로 만리장성 넘기
올해 11월 20일까지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400억달러를 기록했다. 건국 이래 사상 최대치다. 2017년 952억달러를 기록하였던 흑자가 불과 5년 만에 400억달러의 적자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러나 지난 5년간 무역수지 추이를 살펴보면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연평균 277억달러씩 감소했다.
금년에는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에너지가격이 급등하면서 9월까지 원유 가스 석탄 등에서 약 300억달러의 적자가 추가되었지만 단순히 에너지가격 급등만이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아니다. 한국 제조업에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역수지 적자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우선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적으로 급감하고 있는 것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8년 556억달러를 기록했던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 243억달러로 감소했고, 금년 9월까지는 39억달러로 급감했다. 반면 우리의 전통적 무역수지 적자 상대국들인 일본과 독일에 대한 적자 규모는 지난 5년간 매년 350억달러씩 유지되면서 한국 무역수지 적자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5년간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한 품목들은 조선(190억달러), LCD와 장비(73억달러), 핸드폰과 부품(64억달러), 보조기억장치(55억달러) 등이다. 자원성 품목을 제외하고 동 기간 수입이 대폭 증가한 품목들은 반도체(182억달러), 정밀화학 원료(54억달러, 배터리 소재), 의약품(47억달러), 반도체 제조용 장비(43억달러), 컴퓨터(33억달러) 등이다.
조선과 디스플레이 산업 등에서는 중국으로부터 강한 추격을 받으면서 수출이 위축되고 있는 반면, 일본·독일과는 여전히 기술격차를 보이면서 이들 국가들로부터 반도체장비를 포함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입이 줄지 않고 있다.
한국 무역수지 적자 발생의 원인 파악은 쉬운데 그것을 해결하기가 정말 어렵다. 이미 1980년대부터 중소기업 육성과 더불어 부품소재 국산화는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으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근본적 원인은 우리 내수시장이 너무 작아 소부장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에 따른 글로벌 가성비를 갖추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중국 소부장 시장 독일 일본이 장악
소부장의 대표적 선두 국가는 독일과 일본이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몬 지몬은 60년 이상 기업으로 매출액이 4300억원 이상, 연평균 8.8% 이상씩 성장하며, 자기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33% 이상인 기업들을 '히든 챔피언'으로 정의하면서 이런 기업들이 독일에 2014년 1307개나 있다고 했다. 일본의 강소기업인 모노즈쿠리 역시 유사하다. 전세계 100년 이상 존속 기업의 80%가 일본에 있다고 한다.
소부장 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소부장은 제조업의 근간으로 일자리와 소득창출은 물론 산업구조 다변화와 고도화, 신제품 개발에 필수불가결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세계 경제가 자국 중심의 보호주의로 전환되면서 공급망 관리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며 소부장산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독일과 일본 사례에서 보듯 소부장산업에서의 난제는 국산화와 함께 글로벌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알 수 있듯 우리 내수시장만으로는 글로벌 가성비를 맞출 수가 없다. 그러면 수출시장으로 어디가 가능한가? 당장은 중국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주지하다시피 세계 제조업의 30%를 차지하는 공장이다. 2021년 중국 수입규모는 2조7000억달러로 미국의 95%에 달했다. 미국과 달리 중국 수입시장은 70% 이상이 소부장이다. 그리고 중국의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출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소부장에 대한 수입 규모도 커지고 새로운 수입품목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에너지와 자원, 식량을 제외하면 중국에서 수입이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품목들은 대부분 소부장들이다. 반도체 제조장비, 전기자동차 부품, 합성고무 등의 증가율이 연평균 30% 이상을 기록했고, 의료기기, 안테나 부품,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저장장치 등도 10% 이상의 연평균 증가율을 보였다. 반도체 검사장비, 노트북 부품, 음극재, 축전기, 증폭기, 기어박스 등도 수입 증가율이 최근 정체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규모 적자산업들이다. 중국 역시 핵심 소부장들을 모두 독일이나 일본에 의존한다.
중국정부도 소부장 국산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홍색공급망을 구축한 데 이어 최근에는 독일의 히든 챔피언을 모방해 전정특신(專精特新, 전문화 정밀화 특색화 혁신화) 기업들을 육성하고자 한다.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 기간 산업정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보면 아직 중국에는 소부장 관련 기업들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다. 특히 반도체나 OLED 등에서 글로벌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앞서 언급했던 중국의 수입액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것도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또한 제3기 시진핑정부가 공동부유를 주창하면서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소부장 산업은 그 특성상 국유기업보다는 민영기업들이 주도적일 수밖에 없으나 요즘 중국 민영기업가들이 의욕을 갖기가 힘들어 보인다.
소부장 으뜸기업을 히든 챔피언으로
이제 한국에도 독일의 히든 챔피언과 같은 기업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의 한 경쟁입찰에서 쟁쟁한 글로벌 업체들을 모두 물리치고 한국의 중소업체가 낙찰되었다고 한다.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는 전문업체로 이미 5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유럽 일본산만을 고집하던 중국시장도 사로잡았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부장 으뜸기업들을 히든 챔피언으로 만들어 보자. 한국을 독일과 일본에 버금가는 소부장 강국으로 육성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소부장에 정부는 물론 온 국가가 올인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 특히 소부장산업이 중국과 일본·독일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는 신세만큼은 막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소부장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데 불편한 환경을 조성해서는 안된다. 수교 이후 그래왔듯 정경분리와 상호이익의 원칙에 따라 중국시장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