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의 과학산책
'이기적 유전자'와 작별해야 할 때
월드컵 축구의 흥행은 '국뽕'이 근거다. 왜 우리는 국뽕에 젖는가? 그건 인간 본성의 생물학이 설명한다. 우리 유전자에는 나와 너를 가르는 부족주의가 뿌리박고 있다고 한다. '우리편 이겨라'가 우리 본성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그걸 잘 설명하는 책이다.
1976년에 나온 도킨스 책은 세상을 보는 많은 이의 시선을 바꿨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게 있다. "한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동의한다. 나도 그랬다. 나의 성적인 행동, 나의 사회적 행동을 추동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도킨스는 알려주었다. 눈앞을 가린 뿌연 안개가 확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가 봉착한 어려움이 있었다. 나에게 이로운, 즉 이기적 행위의 바탕을 이루는 생물학적 이유는 알겠는데 이타적인 행위는 왜 하느냐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협력 행위를 수 없이 한다. 이런 협력은 왜 출현했을까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혈연선택론'이 그런 모범답안 중 하나다. 유전자를 공유한 다른 사람과는 기꺼이 협력한다는 거다. 다른 설명 중 하나는 '너의 등을 긁어 줄테니, 나의 등을 긁어다오'다. 도움을 받을 걸 기대하고 도움을 준다는 호혜주의다. 이타성의 바닥에 이기적인 동기가 있다는 말을 극적으로 표현한 말은 이런 거다. "이타주의자를 할퀴어 '위선자'의 피가 흐르는 걸 보라."(미국의 민달팽이 연구자 마이클 기셀린).
네덜란드 출신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와 보노보를 관찰한 책을 많이 내놨다. 영장류를 보고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관점을 내놓았다. '침팬지 폴리틱스' '내 안의 유인원' 등. 이중에서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거다. "인간은 양극성이 심한 유인원이다. 침팬지보다 더 잔인하고, 보노보보다 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내 안의 본성 중 무엇을 꺼내느냐가 관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는 동아시아에도 오랜 전통이 있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그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천사일 수도, 악마일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는 '천사일까 악마일까'라는 양자택일을 하고 싶어 했다. 드 발의 표현을 빌면 침팬지와 보노보 중에 우리는 누구와 가까울까를 생각했다.
특히 사람들은 '악마성'에 주목했다. 기독교는 '인간의 죄'를 강조했고 이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끝없이 죄를 용서해달라고 신에게 빌자고 했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1954년)이 노벨문학상(1983년)은 받은 것도, '어둠의 심연'(조셉 콘라드, 1899년)이 나오고 100년이 지났지만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악마 같은 남성'(1996년), '루시퍼 이펙트'(2007년), '인류의 범죄사'(콜린 윌슨) 같은 책도 인간 심층과 역사에서 벌어졌던 '악마의 얼굴'을 보여주려고 한 시도들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왜 협력하는가에는 사람들 관심이 덜했다. 1차대전 중 유럽 최전선에서 크리스마스 휴전이 지휘관 허락없이 왜 일어났고, 2차대전 중 상대를 향해 실제로 총을 쏜 사람은 병사의 20%를 밑돈다는 이야기는 무시됐다. '이기적 유전자' 20년이 지난 뒤에 또다른 영국인이 쓴 '이타적 유전자'는 별달리 화제가 되지 못했다.
학자들 연구를 보면 결국 우리 개개인은 매우 협력적이고 이타적이다. 하지만 남은 믿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내 맘 같지 않으니, 뒤통수를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은 건 우리 안에서 뭘 끄집어내느냐다.
'휴먼카인드'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우화 한가지를 소개한다. 우리 안에 두 마리 늑대가 살고 있다. 이기적인 늑대와 이타적인 늑대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두 마리 중에서 누구에게 젖을 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제 '이타적 유전자' 시대 만들어가야 할 때
세계는 또다시 위기로 치닫고 있다. 각자도생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기적인 늑대에게 젖을 당분간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옥의 문을 우리 스스로 여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이기적 유전자' 시대를 뒤로 하고, 우리는 '이타적 유전자'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한국 대형서점의 과학책 베스트셀러 칸을 수십년 째 점하고 있지만 이제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 월드컵이 부족주의 본능을 승화시킨 지구촌 축제이듯, 본성의 긍정적인 측면에 우리는 젖을 주면서 미래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사나운 늑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