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확실성 시대,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2022-12-21 10:41:24 게재
신종호 한양대 ERICA 중국학과 교수

2022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연속이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2월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종전의 모멘텀을 잡지 못한 채 장기화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도 이제 경제통상과 외교안보 분야를 넘어 가치와 규범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역적 차원에서도 개별 국가들은 자국이 직면한 위협과 도전을 강조하면서 '국익 기반'의 각자도생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은 모든 외교적 역량을 인도·태평양전략에 집중해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했고, '칩4' 동맹과 인플레감축법(IRA)을 만드는 등 '미국 이익' 확보에 충실했다.

중국도 10월에 개최된 제20차 당대회에서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도전을 특히 강조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전' 태세를 분명히 했다. 일본정부도 '신시대 리얼리즘 외교'와 경제안보에 대한 강조를 통해 국익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반도 차원에서는 북한발 위협과 도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9월 북한최고인민회의에서는 자의적 위협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남한을 겨냥한 핵선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핵무력 법제화'를 단행했다. 이는 곧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언제 단행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탈세계화로 각자도생 외교시대 도래

문제는 글로벌·지역적 차원의 '대전환'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핵·북한문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정부는 북핵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한미동맹에 올인하고 한미일안보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대외정책을 천명했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북한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북미 협상의 핵심 당사자 미국도 아직까지 우리가 제시한 '담대한 구상'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시진핑 3기' 지도부의 관심 역시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대응과 국내 경제회복에 집중되어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의 불확실성 시대에 조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 중장기 대외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외교의 '상수'가 되어버린 미중 전략경쟁은 향후 10년 글로벌 질서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중관계의 향방에 대한 균형감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주권이나 영토 및 핵심이익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의 전략적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국제적 논쟁 사안이나 우리의 국익과 직접적 관련성이 낮은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되 전략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등 서구세계가 '가치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자외교 무대에서 우리의 원칙적 입장을 밝힐 필요는 있지만, 상대국과의 양자외교 과정에서는 '가치외교'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국익' 관점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균형감과 탄력성 갖춘 국익외교 필요

2023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지속되겠지만, 우리정부의 이전보다는 균형감있고 탄력성을 갖춘 '국익 기반' 외교 추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