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해법
지난 7월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긴급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 전에는 인천지역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이달 초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잠정 중단키로 했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한 것은 전공의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전공의 부족은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병원협회가 마감한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결과를 보면 전국 수련병원 67곳 중 소아청소년과 지원자는 전체 정원 201명의 16.4%(33명)에 그쳤다. 지난해(27.5%)보다 더 떨어졌다. 역대 최저다. 이른바 '빅5 병원'조차도 대부분 미달이었다.
소아청소년과가 가장 심각하지만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진료과들도 마찬가지다. 반면 상대적으로 덜 힘든 안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피부과 등은 전공의들이 몰린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인기가 없는 진료과에는 전공의가 부족하고 인기 과에만 쏠림현상이 지속되는 등 필수의료 진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 그렇다고 '번 아웃'이 일상이고 돈벌이가 되지 않는 진료과에 지원하지 않는 의사들을 탓할 수도 없다.
중장기 인력 수급대책 마련 시급
무너진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절한 보상체계와 중장기 인력 수급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도 8일 공청회를 열고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 중증 응급질환을 포함해 고위험 산모, 소아청소년 진료 지원 등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한다.
'공공정책수가' 제도를 도입해 진료량을 늘려야 수익이 늘어나는 행위별 수가제를 보완하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별도의 수가체계를 마련해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전공의 당직과 근무시간 등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지방병원과 필수과목에 대한 전공의 균형배치를 통해 지역과 과목간 인력 격차를 줄여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인력을 공급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는 아쉽게도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수 확대 등 알맹이가 빠져있다. 수가를 인상하거나 24시간 대기 등 근무 부담을 줄이는 대책만으로 필수의료분야 인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
필수의료 인력 공급 대책 중 의대 정원 확대는 향후 '의정협의체'를 통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0년 의사정원 확대를 추진했으나 파업 등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논의를 코로나19 안정화 이후로 미뤘다. 의료계와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이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부족한 의료인력 충원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의사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7명에 훨씬 못 미친다. 2006년 이후 17년째 동결(3058명)된 전국 의대 총정원을 늘려야 한다. 코로나 상황도 어느 정도 진정돼 간다. 내년에는 정부가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의대 정원 증원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지금까지 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역의 의료공백을 군 복무를 대체한 공중보건의가 메워왔으나 공보의 숫자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방 등 의료 취약지역과 부족한 진료과목 의료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공공의료도 더욱 강화하고 수년째 지지부진한 '공공의대' 설립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땜질식 처방 아닌 제대로 된 대책을
정부가 공공정책수가 도입, 의료전문인력 확보 방안 등 총론적인 대책을 우선 내놨다. 앞으로 세부 액션플랜을 만들어 내실있게 추진하길 바란다.
우리나라는 2026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의 20%에 도달하는 초고령사회 진입한다. 의료기관의 기능별 역할 재정립을 위해 의료전달체계 개편 작업도 속도를 내야 한다. 만성질환 관리 등에 대한 동네의원의 역할을 활성화하고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응급 입원환자 등 필수의료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 반드시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