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노조의 회계 투명성과 정당성

2022-12-27 10:49:23 게재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기획재정부 신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노조부패를 공직부패, 기업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로 규정하면서 노조의 회계 투명성 확보를 강조했다. 여당은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조의 사회적 역할과 영향력은 확대돼왔다. 노사정협의체 등 사회적 기구에서 이해관계자로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등을 통해 경영에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조합비는 지정기부금으로 세제 혜택도 주고 있다. 반면 노조 간부들의 조합비 횡령 등 비리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위원장이 10억원대 조합비 횡령으로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전국공공운수노조 전 지부장, 현대제철 금호타이어 등 노조 간부의 횡령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회계 투명성은 지배구조 건전성의 판단기준

지배구조는 조직 활동에 대한 통제시스템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매커니즘이다. 노조는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다. 노조도 투표를 통해 집행부를 선출하고 조합원의 회비로 운영되기 때문에 집행부와 일반노조원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노조의 자주성을 인정하더라도 다수 조합원의 이해관계가 민주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필요하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회계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고, 독립적인 회계전문가가 내부감사를 담당하는 내부통제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에 더해 외부감사를 통해 회계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또 감사받은 회계보고서는 이해관계자들에게 공개되어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대표자가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원을 통해 회계장부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내용과 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며, 회계감사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규정상 노조 회계감사원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관한 규정이 없고, 조합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만 회계장부도 제한적으로 열람이 가능하다. 회계보고서에 대한 외부감사 의무도 없기 때문에, 적절한 내부통제장치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재정 운영에 대한 신뢰성은 노조 대표자의 도덕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조합원이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노조다. 노조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노조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노조가 재정집행을 불투명하게 하면서 조합원에게 계속 회비를 내라고 할 명분은 없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라도 회계 투명성이 무너지면 사회적 정당성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은 사회적 정당성 확보의 출발점

2005년 노조 간부들의 비리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노총은 자발적으로 외부감사를 받기로 했다. 국고지원금에 대해서는 외부 회계법인에 정산을 의뢰하고, 일반재정은 내부감사와 외부 공인회계사가 함께 참여해 1년에 2회 결산을 하고 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정 노력을 한 것이다.

노조가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내부감사에 집행부로부터 독립적인 회계전문가를 임명하고, 대규모 노조는 자발적으로 외부감사를 받고 주요 내용을 공시하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다. 노조가 자발적으로 회계 투명성을 높인다면 사회적 지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조 집행부의 회계 투명성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