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윗선 수사' 통로 열렸다
특수본, 박희영 구청장 신병 확보 … 법원, 공동정범 인정
용산구 안전재난과장도 구속 … 소방당국 수사 속도낼 듯
이 총경 구속을 통해 경찰 지휘부 혐의를 입증할 연결고리가 만들어졌고, 박 구청장 구속으로 상급기관이자 안전·재난 '컨트롤타워'인 서울시와 행안부 수사 명분도 확보했기 때문이다. 유족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윗선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특수본은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판례 등을 참고해, 이태원 참사도 관계기관들의 과실이 중첩돼 발생했다고 보고 관련자들을 '공동정범'으로 묶어서 법리를 구성했다.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란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범죄를 공모하지 않았더라도 공동 과실로 범죄 결과를 일으켰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범으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대법원은 성수대교 사고 당시 동아건설 관계자와 서울시 공무원 등 1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공동정범으로 인정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소방당국이 아직 남아 있지만 현장 책임자 초동수사는 마무리됐다"며 "행안부·서울시 수사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특수본은 서울시와 행안부 안전 관련 실무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수사 중이다.
◆증거인멸 우려, 결정적 역할 = 서울서부지방법원 김유미 영장전담 판사는 26일 박 구청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구청장은 핼러윈 기간 안전사고 예방대책 마련을 소홀히 하고 참사에 부적절하게 대처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를 받는다. 박 구청장 측은 이날 심문에서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여서 지방자치단체 책임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김 판사는 주최자 유무와 무관하게 대규모 인파 행사가 예정된 경우 관할 지자체가 일차적 안전관리 책임을 진다고 봤다. 박 구청장이 수사를 앞두고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도 구속 사유에 참작됐다.
핼러윈축제 안전조치 부서 책임자인 최원준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의 구속영장도 함께 발부됐다. 최 과장은 부실한 사전조치로 참사를 초래하고 사후대응도 소홀히 해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를 받는다. 특히 참사 발생 후 수습에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도 적용됐다.
특수본은 최 과장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그가 지인과 술자리에서 참사를 인지한 뒤 택시를 타고 사고 현장 인근 녹사평역까지 갔다가 차를 돌려 귀가한 사실을 확인했다. 최 과장은 당시 만취 상태였기 때문에 이동 경로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김 판사는 그가 고의로 직무를 저버렸다고 판단했다. 특수본 출범 이후 구속된 피의자는 모두 6명으로 늘었다.
◆용산소방서장 신병 확보 나설 듯 = 특수본은 조만간 참사 당일 현장 소방 대응을 지휘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신병 확보에도 나설 방침이다.
앞서 특수본은 최 서장의 부실 대응이 인명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고 결론 내렸다. 특수본 관계자는 지난 22일 "용산소방서장의 부실한 구조 지휘가 피해를 확산한 중요한 원인이 됐다"며 구속수사 방침을 공식화했다.
특수본에 따르면 최 서장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참사가 시작돼 대규모 사상자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방당국 근무기록과 현장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결과 최 서장이 참사 당일인 지난 10월 29일 오후 10시 28분부터 지휘권을 선언한 오후 11시 8분까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수본의 판단이다. 또 안전근무조가 지정된 근무지인 해밀톤호텔 앞에서 벗어나 있던 것에 대해서도 최 서장의 관리·감독 소홀 책임이 있다고 봤다.
앞서 최 서장은 당시 구조·구급활동에 몰두하느라 대응 2단계를 직접 발령하지 못했고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이 발령한 대응 2단계가 늦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안전근무 역시 순찰과 마찬가지로 지정된 장소를 내내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특수본은 또 참사 당일 중앙긴급구조통제단(중앙통제단) 운영과 관련한 문건을 허위로 작성한 혐의를 받는 소방청 소속 공무원들 신병 확보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이태원역에서 하차하려는 승객이 크게 늘어나는 데도 무정차 통과 조치를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를 받는 송은영 이태원역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