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하는 과학산책

축제의 음식 떡국에 담긴 과학이야기

2023-01-03 17:42:39 게재
김기명 전 호남대 교수, 식품공학

새해 첫날이 되면 떡국을 먹는다. 떡국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가래떡은 멥쌀로 밥을 지어 떡메로 치고 뜨거운 것을 찬물에 담가 손으로 길게 뽑아냈다. 이것이 꾸덕꾸덕하게 굳어지면 얇게 타원형으로 썰어 국에 넣어 떡국으로 만든다. 꿩고기 육수로 국물을 내는데 꿩 대신 닭이라고 닭 국물에 떡국을 끓이기도 한다.

보슬보슬한 밥을 물리적 힘을 가해 치밀한 떡으로 성형을 했으니, 떡국의 떡은 같은 무게의 밥보다 더 높은 열량을 가지고 있다. 100g 당 kcal를 보면 즉석밥이 대략 150kcal 정도인데 비해 떡국 떡이 238kcal나 된다.

떡국 조리법을 살펴보니 떡을 1인분 200g 안팎으로 넣고 육수에 부재료까지 넣은 떡국은 꽤 높은 열량이다. 어쩌면 떡국 한그릇은 고봉밥만큼의 탄수화물이 들어갔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세시풍속을 담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나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설날을 묘사한 것을 보면 남녀노소가 설빔을 입고 이웃 어른과 친척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세배를 올리고 손님을 맞은 집은 세찬을 대접했다.

설날부터 3일까지 길에는 왕래가 부산하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거나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집안에선 차례를 지내고, 세주(도소주, 屠蘇酒)를 음미하고, 윷놀이나 널뛰기를 하며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니 예전부터 새해 첫날은 민중에겐 하나의 축제였던 셈이다. 축제 기간인데 과량의 탄수화물만큼은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떡국의 떡, 호화와 노화의 합주

떡국은 전분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몸에 X-선을 통과시키면 뼈가 나타나듯이 생 전분은 긴 포도당 사슬들이 서로 단단히 결속되어 동심원 테가 나타난다. 따라서 생 전분을 몸에선 분해하긴 힘들다.

그러나 전분은 호화(糊化, gelatinization) 과정을 거치면 동심원 테가 사라지게 된다. 호화란 전분을 대량의 물에 넣고 고열로 가하면 전분 사슬의 결속력이 느슨해지고 그 틈으로 물 분자들이 전분을 이루는 포도당 포도당의 수산기(-OH)와 수소결합을 형성해 구조가 풀어지는 현상이다.

이 호화 덕분에 몸 안의 효소가 쉽게 전분을 분해하는 것이다. 호화된 이후 오래 내버려 두면 전분 사이로 침투한 물 분자가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벌어진 전분 사슬들의 재결합이 일어나 다시 딱딱하게 굳어져 상품성을 잃게 된다. 이 현상을 노화(老化, retrogradation)라고 한다. 건조한 날 빵을 내버려 뒀을 때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가래떡은 가벼운 노화를 거쳐야 칼질할 수 있으니 떡국의 떡은 호화와 노화 모두 필요하다. 노화된 떡을 타원형으로 썰어 다시 국을 만드니 결국, 호화-노화-호화 과정이 되풀이된 결과물이다. 딱딱하게 굳은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 표면적을 넓혀 호화가 빠르게 진행되도록 한 것도 그 나름 오래된 조리의 팁이다.

곰팡이와 친한 떡국

개인적으로 마트에서 1인분 곰탕을 사서 끓여 떡국을 넣어 자주 먹는데, 여기에 양파나 마늘 혹은 소스를 창의성 있게 첨가하면 더욱 훌륭하고 간편한 한 끼가 된다. 그러나 떡국 떡을 냉장고에 잘못 보관하면 난처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거기에 검은색, 혹은 푸른색 곰팡이의 등장은 더욱 그렇다. 미생물 중 생육 최저 수분활성도(water activity)에서 살아남는 것은 곰팡이들이다. 즉 건조된 식품의 적은 곰팡이다. 딱딱한 떡국 표면의 수분이 날아가면 결국 곰팡이가 자라날 확률이 높아진다.

곰팡이의 색이 발현되었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포자(spore)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후다. 작은 포자 알갱이가 이미 포장 안에서 퍼질 만큼 퍼졌다는 의미다. 간혹 곰팡이가 붙은 부분만 제거하고 음식에 사용하는데 그냥 버리는 게 맞다.

곰팡이의 포자는 식물에 견주면 씨앗이라고 보면 되는데 열에 강하고 어떤 포자는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품에 이런 균과의 조우는 제조과정 중 오염보다 포장이 개봉된 이후의 오염이다. 왜냐하면 떡류는 한국식품안전관리인정원(HACCP) 의무적용 식품 대상이기 때문이다. 떡국 떡은 입고된 재료를 계량 세척 불림 분쇄 배합 증자(가열) 성형 포장의 공정을 통하여 제조된다.

이 중 가장 위험도가 높은 공정 혹은 위험성을 차단할 수 있는 단위공정을 중점 관리하게 되는데 주로 증자과정의 온도와 시간 등을 철저히 관리한다. 이때 가열조건은 호화를 진행할 뿐 아니라 위해 미생물까지 사멸시키는 조건으로 공정이 운영된다. 구매한 떡국 떡은 장기보관하려면 산소를 너무 좋아하는 곰팡이가 자라지 못하도록 기체를 되도록 빼고 냉동 보관하는 것이 안전하다.

떡국에는 덕담을 뿌리세요

설날은 한 해 동안 우리를 괴롭힌 귀신을 물리치고 복이 오길 기원하는 날이다. 연도가 달라진다고 마치 모든 죄를 사해주듯이 지난 흉이 없어질 것도 아니고 받은 상처가 깨끗이 낫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천연덕스럽게 행하는 풍습이 된 의식들은 소박한 해학이다.

떡국을 먹는다는 것은 지나가는 해를 끊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경계선의 역할을 한다. 기다란 가래떡은 장수를 원형의 모양은 돈을 상징한다. 즉 건강 무탈하고 빈궁하게 살지 않길 기원하는 소박한 기원이다. 결국 ‘올해에도’, 아니면 ‘올해에는’ 잘 먹고 잘 살자는 민중의 소망 노래다.

또한 떡국은 흩어진 가족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한다. 여기에 서로 덕담을 첨가하면 성공적인 신년의 첫날이다. 잔소리는 윗사람 처지에선 관심의 표현이라는 믿음으로 하겠지만, 듣는 사람이 ‘기운 내라’라는 말조차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시대다. 떡국을 차린 새해 첫날, 잔소리는 덮고 짭조름한 덕담을 따뜻한 떡국에 솔솔 뿌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