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수능 문과침공
"문과침공 줄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
사회탐구 어렵게 출제되면서 다른 양상 전망 … "교차지원 성향 여전"
지난 12월 31일 2023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를 마감한 서울대·연세대 경쟁률이 전년도보다 크게 떨어졌다. 이를 두고 입시전문가들은 이과 학생들이 높은 표준점수를 바탕으로 인문사회계열에 교차지원하는 이른바 '문과 침공'이 예상보다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문과 침공'이 예상보다 줄었다고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3학년 수능 성적표가 나온 뒤 진학 상담을 진행한 교사들과 입시 전문가들은 "교차지원 성향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올해는 사회탐구 선택 과목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문과 침공'이 지난해와는 다른 양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대학가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23학년 수능 성적표가 나온 뒤 진학 상담을 진행한 교사들과 입시 전문가들이 느끼는 분위기에 따르면 교차지원 성향은 여전했다.
문현정 서울 숙명여고 교사는 4일 "서강대는 통합수능 전부터 교차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에 2022학년 입시 때부터 교차 지원 상담이 많았다"면서 "이번에는 전년 사례를 봐서 더 많이 문의하는 상황이다. 인문계열 학생들도 '미적분'이나 과학탐구에 가산점이 없는 대학의 자연계열 학과를 지원하려는 사례도 있지만 우리 학교 14개 학급 중 10개 학급이 자연계열이다 보니 교차지원 성향이 작년보다 더한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학생들이 재수를 해도 큰 폭으로 성적이 오를 거란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교차지원을 해서라도 대학을 최대한 높여가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실제로 2022학년 입시 때도 수시에서 떨어진 상위권 자연계열 학생들이 대부분 인문계열 학과로 지원해서 갔다"고 설명했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도 "대부분 자연계열 학생들이 교차지원을 생각하고 있다"라며 "다만 이 가운데 현실적으로 교차지원 성공 가능성이 있는 수험생들은 3명중 1명 정도다. 20~30%는 교차지원으로 진학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연 계열 응시자 교차지원 가능성 학과는 = 2022학년 수능에서 교차지원 한 자연계열 응시자들이 어느 학과에 많은 관심을 보였을까? 경희대가 공개한 '2022학년 정시 문과 교차지원 현황'에 따르면 그해 수능에서 '확률과 통계'와 '미적분'을 선택한 응시자들의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한 비율은 각각 47.8%, 39.1%였다.
반면 상경계열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같은해 '확률과 통계' 응시자들이 경희대 상경계열 학과에 지원한 비율은 35.0%에 그친 반면 '미적분' 응시자들의 지원율은 56.8%였다. 특히 건축학(인문), 한의예, 국제학, 간호학(인문), 회계·세무 학과는 60~70%대 지원율을 보였고 빅데이터응용학은 무려 92.3%에 달했다.
'미적분' 응시자들이 교차지원한 학과는 상경·보건계열 만은 아니다. 상경계열에 이어서 50% 이상의 지원율을 보인 학과로는 자율전공학 의상학 국제학 정치외교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 경제학 경영학 지리학(인문) 무역학 행정학 아동가족학 등이 있다. 이들 학과는 인문·자연계열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학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같은 경향성은 다른 대학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한양대 입학처는 "아무래도 '미적분'이나 '기하', 과탐 선택과목 응시자들이 상경계열에 많이 지원했다"면서 "반면 어문계열 같은 자연계열 응시생들이 주저할만한 학과들은 상대적으로 지원율이 저조했다"고 말했다.
김진석 경기 소명여고 교사도 "교차지원을 고민하는 자연계열 학생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면서 "학교에서 진학 상담도 그렇고 외부 컨설팅에서도 많은 경우 상경계열에 관심이 있긴 하다"고 전했다. 다만 경희대가 공개한 '2022학년 정시 문과 교차지원 현황'에서 나타났듯 사회과학계열 학과나 AI(인공지능) 관련 학과도 자연계열 응시자들의 관심이 높다.
문 교사는 "작년에는 교차지원이 쉬운 편이라서 너무나 당연히 상경계열로 지원했다"면서 "올해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데 의류나 화장품 쪽에도 관심이 많고 무엇보다 일단 '점프에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 영어영문학 같은 어문계열도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했다.
교차지원은 사실상 상위권 자연계열 응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다. 때문에 최상위권 대학일수록 학과를 따지지 않고 지원하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다만 중상위권 대학은 진학 후 학업이라든지 졸업 후 진로를 고려해 조금 신중하게 전공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입시평가소장은 "상경계열 외에도 데이터사이언스나 인공지능 관련 신설 학과도 많이 희망하는 편"이라며 "자율전공이나 인문과 자연에서 각각 선발하는 학과도 자연계열 학생이 인문 모집 단위로 지원할 수 있어서 경쟁률이 높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문 계열 응시자 추가 합격 노려볼 만 = 올해 수능에서 탐구가 변수로 떠오르면서 자연계열 응시자들이 작년만큼 유리하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조 대표는 "교차지원으로 대학을 높이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탐도 전년보다 표준점수가 올라가 과탐이 사탐보다 월등히 유리하지 않다"면서 "'확률과 통계'와 '미적분'의 점수 차도 전년보다 좁혀졌다. 또 인문계열 상위권 학생들 중 '미적분'을 응시한 비율이 전년보다 늘어 인문 계열 응시자들이 아주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차지원을 하더라도 본인의 점수가 지원 대학의 과목별 반영 비율이나 변환 표준점수에서 유리하게 맞아 떨어지는 사례가 아니라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석에 인문계열 응시자들의 추가 합격률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 교사는 "2022학년 경희대 서울캠퍼스 인문계열 학과와 국제캠퍼스 자연계열 학과에 모두 합격한 학생이 최종적으로 자연계열 학과를 선택했다"며 "적성에 맞지 않으면 적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자연계열학과로 진학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2년 연속 대학 편입학 모집 인원이 늘어난 데 대해 교차지원에 따른 중도 이탈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2월 28일 김영편입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소재 15개 대학의 편입 모집 인원은 3489명으로 전년(3251명)보다 238명(7.3%) 늘었다.
15개 대학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홍익대 등이다. 대학별로는 중앙대가 464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한다. 이어 건국대(452명) 고려대(377명) 연세대(358명) 등의 순이었다.
일선 교사들도 교차지원에 대한 학생들의 지나친 관심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심재준 서울 휘문고 교사는 "교차지원을 고민하는 자체가 적성이나 흥미보다는 대학 간판을 겨냥한 것이기에 진학 후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지도하고 있다"면서 "특히 학생들이 복수전공 제도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은데 대학에 따라 운영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수를 고려할 경우 1학년 때 휴학을 허용하지 않는 대학도 있기 때문에 진학 후 재수는 사실상 힘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기수 기자 ·조나리 내일교육 기자 jon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