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칼럼

젊은 인재를 의대가 빨아들였으나

2023-01-05 10:50:29 게재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더 메디컬 편집국장

대입 수능에서 전국 1등을 한 학생은 의대에 가겠다고 했다. 수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의대 러시(rush)' 현상은 오래 됐다. 문제는 의대가 우수한 두뇌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는 거다. 이로 인해 물리학과와 수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 위상이 상대적으로 추락했고,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한국 자연과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다. 의대 문 앞은 장사진인데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예컨대 4일 신문 몇개에 '필수의료 인력 공백 심화'라는 글들이 실렸다. 인천 가천길병원이 소아과병동에 당분간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발표한 게 글들이 나온 계기다.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와 같은 필수의료 분야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 문을 나온 그 많은 수재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환자를 보기보다는 기초의학자의 길을 택했을까? 혹은 과학자-공학자와 손잡고 디지털헬스케어라는 미래형 진료 시대를 열기 위해 연구실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에게 물어보니, 서울대 의대 1등에서 10등 졸업생이 피부과에 앞 다퉈 지원한다고 했다. 왜 피부과를 선호할까? 온콜(on-call) 당직 없고, 의료 사고 나서 책임질 일 별로 없고, 경제적으로 더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안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가 다 이와 비슷해서 젊은 의사가 선호한다.

의사와 일반인 소득격차, 한국 세계 2위

의사를 찾아보기 힘든 건 지역 의료원에서도 오래 되었다. 지역 의료원의 진료 체계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다. 전북 군산의료원은 지난해 10월 현재 의사 정원 46명 중 12명이 결원이고, 안과에는 의사가 한명도 없다. 군산의료원 사이트에 가면 '안과(휴진)'이라고 쓰여 있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난과 관련해 대부분 의사는 '수가'를 올려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돈을 더 주면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나, 필수의료 진료과의 의사를 고용하는 병원에 그나마 인센티브가 될 거라고 했다.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당장에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돈'을 과연 얼마나 더 줘야 한다는 말인가?

의사의 연평균 소득이 얼마인지 지난해 7월 보건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자료가 있다. 연 2억3070만원이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개원의)의 경우 2억9428만원이고, 월급을 받는 의사(봉직의)는 1억8539만원이었다.

의사 평균 소득과 한국인 평균 소득간의 차이는 얼마인가를 보여주는 다른 통계가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이 1등이고, 한국은 2등이다. 미국은 의사 소득이 높은 걸로 유명한 사회인데, 한국이 그걸 바로 따라가고 있다. 의사들에 돈 많이 주자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의사 수입이 어느 정도까지 많아도 좋다고 받아들이느냐다. 의사 집단과 일반인의 소득 차이가 확대되면 한국 사회는 어느 순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지 모른다.

의사난 해법으로 제시되는 다른 아이디어는 의사 공급 확대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늘리면 필수의료 분야나, 지방에 의사를 더 공급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의대 전체 정원은 지난 2000년보다 줄어든 규모다. 3300명이던 의대 입학정원은 3000명 선으로 줄었다.

당시 김대중정부가 의약분업을 밀어붙이면서 이에 반대하는 의사 단체를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을 줄여줬다. 의사수를 줄여 의사 몸값이 올라가는 당근을 줬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으니, 현재의 의대 정원을 일단 2000년 수준으로 원상 복귀시키자고 한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이 이런 얘기를 하는 대표적인 인사다.

의사단체는 의사를 늘린다고 필수의료 분야나 지방에 의사들이 가겠느냐 라고 반대한다. 인구가 줄고 있으니 늘릴 게 아니라 줄이는 게 맞다고 한다. 의사 공급을 늘리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듯이 의료비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거라고도 한다.

엘리트 집단이 이기적 모습 보여선 안돼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확대에 더 이상 반대해서는 안된다. 의사 인력난 해결을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우리는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단체가 계속 반대하면 과거 변호사수를 늘리는 데 반대한 변호사 단체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줄 것이다. 국민 건강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을 놓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판받게 된다. 한국의 젊은 수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게 의대이고, 의사는 이 시대 최고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있다. 엘리트 집단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건강한 사회다.

윤석열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의대정원을 내년도 대학 입시부터 늘리고 싶어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 문제 해결에 의욕을 내비친 바 있다. 의사 인력난 문제도 잘 돌파해낼 걸 기대한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