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칠곡할매글꼴'이 위대한 문화유산인 까닭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연하장에 성인 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의 서체인 '칠곡할매글꼴'을 사용해 관심을 끌었다. 해당 글꼴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에도 사용했던 서체로, 이번 연하장에 또 사용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칠곡할매글꼴'은 칠곡군이 어르신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을 통해 처음 한글을 배우고 깨친 할머니들의 글씨를 보존하기 위해 2020년 12월 만들어 한컴오피스와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MS워드·파워포인트의 정식 글씨체로 등록했다.
칠곡군은 해당 글꼴을 제작하기 위해 성인문해교실에서 공부한 할머니들의 글씨 400여개 중 5종을 선발했다. 이때 선정된 김영분(77) 권안자(79) 이원순(86) 이종희(81) 추유을(89) 할머니가 4개월 간 각자 2000장에 달하는 종이에 손수 글씨를 쓰며 연습한 1만여쪽을 바탕으로 글꼴 전문 제작업체가 제작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런 사연에 공감해 해당 글꼴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어르신들의 손글씨가 문화유산이 된 것과 한글의 소중함을 함께 기리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매우 아름다운 미담일 수 있다.
18세 이상 인구중 비문해자 890만명
그런데 할머니들의 글씨가 문화유산으로 탄생하기 이전에 한글을 익혀 쓰기까지의 눈물겨운 사연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학습자들은 글을 모르는 비문해자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간 학습을 통해 글을 익힌다. 과연 우리사회는 이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을까.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 인구 중 읽기·쓰기·셈하기가 불가능한 인구가 200만명, 이를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기가 불편한 수준의 인구가 186만명, 공공 및 경제생활 등 복잡한 일상생활에 활용이 미흡한 인구가 500만명으로 이를 합치면 890여만명에 이른다. 이들을 대상으로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정부가 지원한 것은 2006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NGO 활동가들이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운영해왔다.
헌법 31조는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하고,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해교육을 받는 성인은 헌법에 명시된 의무교육 대상자이나 국가는 이에 대한 관심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국가문해교육센터가 주관하는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 국비지원금은 50억원에 불과하다.
우리사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명제처럼 부르짖는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인지를 묻고 싶다. 이마저도 매년 예산을 편성할 때마다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국회에 호소해야 한다.
성인문해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원 필요
칠곡할매글꼴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사회는 할머니들에 대한 '죄책감'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탄생한 학습문화유산이다.
다음에 또 만들어질 학습문화유산 탄생을 위해 성인문해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간절하게 요청드린다. 이분들이 글을 배우고 익혀 자신의 권리를 아는 순간 900만표를 가진 유권자라는 사실을 정치권은 인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