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출신용기관 운영취지 무너뜨리는 시도 멈춰야
지난해 11월까지 우리나라 수출거래에서 신용장이 활용된 비율은 단 7%로 대부분의 수출은 외상거래로 이뤄진다. 오늘날 신용장을 대신해 외상거래 미결제 위험을 담보하는 수단은 무엇일까? 바로 무역보험이다. 1992년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설립되었을 당시 1조8000억원이었던 무역보험 지원실적은 30년만인 지난해 24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130배 이상 성장했다.
이는 작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약 1/3을 차지하며 본·지사간 거래, 선수금 거래 등 무위험 거래를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 무역보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역보험이 김과 같은 농수산물부터 항공기와 자주포, 플랜트 건설까지 수출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필수불가결한 산소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무역보험의 성장은 무보의 30년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다보면 손해율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지원기관의 높은 손해율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보조금을 통한 불공정 경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수지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공사에서 수익확대와 함께 채권회수 등 손실경감 노력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파문 일으킨 수은법 시행령 개정안
지난 9일 무역보험공사의 30년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출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예고로 인프라자원개발 플랜트 등 중장기 수주를 현지통화로 지원하는 경우 무보 요청없이 수출입은행이 독자적으로 보증할 수 있고, 연간 지원총액도 기존 무보 지원액의 35%에서 50%로 상향한다는 내용이다.
현지통화에 대한 정의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수은이 아무 제한없이 무보가 해오던 업무를 중복해서 수행할 수 있다. 애초에 직접 대출지원은 수은이, 민간자본을 활용한 보험·보증 등 간접지원은 무보가 한다는 두개의 공적 수출신용기관 운영취지를 와해시키는 내용으로 이 안건이 처음 제기되었던 2021년 7월, 무보의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무보가 영세한 중소 수출기업들과 고위험 신흥시장에 과감히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대기업의 중장기 프로젝트 보증수익을 통한 수지균형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무보의 중장기 보증수익 감소를 의미하고 이는 명백히 무보를 또 하나의 구조적 적자 공기업으로 내모는 '개악'이다.
줄어든 중장기 보증수익을 메우려면 무보는 현재 지원 중인 3만여개의 중소 수출기업들에게도 높은 보험료를 요구해야 한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보험가입을 포기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수출거래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정부는 올해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360조원의 무역금융 공급계획을 밝히며 그중 70%에 해당하는 260조원까지 무보가 지원하라고 한다. 무보의 손익구조가 무너진다면 과연 가능한 주문일까? 이번 개정안이야말로 중소 수출기업들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패악은 아닐까?
30년 유지된 수출지원정책 기조 무너져
30년간 유지되어 온 우리나라 수출지원 정책 기조를 망가트리고 향후에 나타날 폐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무보 노조위원장이 아닌 한 사람의 수출지원기관 담당자로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이게 정말 밥그릇 싸움에 불과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