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시민 이동권, '경험'으로 실현
최근 들어 서울 도심 곳곳에 전동휠체어로 무장(?)한 장애인 집단들의 출몰이 잦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철판을 앞에 덧댄 전동휠체어를 앞세운 이들이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하면서 시민들의 바쁜 출근 시간을 좀먹는다고 쑤군댔다. 이들과 맞닥뜨렸던 서울시민들 중 일부는 눈살을 찌푸리며 애써 외면하거나 핏대를 세우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 국민은 지난해 5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논쟁이 불거지고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자 비로소 이 땅에 함께 사는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수단조차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바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체 국민의 5.1%나 되는 장애를 가진 시민들이 거리에서, 상점에서, 학교나 병원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눈부신 발전이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지우고 방치함으로써 얻어낸 결과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22년째 진행 중
1월 22일은 2001년 설을 맞아 역귀성한 장애인 노부부가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사망했던 날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2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0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저상버스 도입율은 전국 합계 28.8%에 불과하고, 특별교통수단 운행대수는 3914대로 법정대수 4694대 대비 83.4% 수준이다.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2.3%다. 서울의 경우 저상버스는 장애인에게는 예약제를 시행하며 그마저도 출퇴근 시간에는 이용할 수 없다. 특별교통수단은 보급대수가 적어 대기시간만 평균 1시간이 넘고 지역간 연계가 안돼 시·도 경계지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그나마 타인의 조력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은 노인이나 짐을 운반하는 사람 등 이용자 급증으로 하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 이용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게다가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나 높이 차이로 인한 위험을 없애달라는 차별소송에 한국의 법원은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을 이유로 원고(장애인) 패소 판결했다. 시외버스나 마을버스에는 저상버스가 아예 없으니 교통체계의 연계성은 물론, 편리성이나 안전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게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이용 상황이다.
1990년대 초반, 목발을 사용했던 필자는 출퇴근을 위해 양손에 장갑을 끼고 기어서 버스를 타고 내렸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렸다. 30여년이 지난 오늘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는 필자는 항상 붐비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장애인콜택시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길 위에 있다. 그동안 변한 것은 늙어버린 내 신체 능력에 맞춘 이동 보조기기와 수치만 개선된 장애인 이동권 '현황'일 뿐이다.
약자 친화적으로 정책변화시킬 기회
이번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인한 사회적 현상이 우리 사회의 약자 친화적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가뭇없이 잊혀질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현황'의 수치가 아닌 '경험'으로 실현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만은 분명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