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트코인 오입금, 횡령죄 성립할까
"달수의 통장에 대체명의로 100억원이라는 돈이 찍힌다. 달수와 은지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우선 3억원을 찾는다." 김상진 감독의 1995년도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의 줄거리다. 현실에서 이런 행위를 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횡령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 성립하는 범죄다(형법 제355조 제1항). 대법원도 어떤 예금계좌에 돈이 착오로 입금된 경우 그 예금주와 송금인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아 입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해 쓴 행위는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디지털 전자정보는 '재물'이 아니다
그런데 '돈'이 아니라 '코인'(가상자산)이라면 어떠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무죄다. 법 감정에는 맞지 않지만 법리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얘기다. 실제 2021년 말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A씨는 알 수 없는 경위로 피해자 B씨의 비트코인을 자신의 계정으로 이체받았는데(오전송), A씨는 자신의 다른 계정으로 해당 비트코인을 이체했다. 검사는 A씨가 주위적(1차적)으로는 횡령죄를, 예비적(2차적)으로는 배임죄를 저질렀다고 보아 기소했다. 그런데 1심과 항소심, 대법원은 횡령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고 있는 자에게 성립하는 범죄다. 횡령죄에서 말하는 '재물'은 '유체물과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이라 볼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만질 수 있는 것이나 전기 수도 수력 등'을 말한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는? 만질 수 없으니 유체물도 아니고, 전기·수도·수력 등과 같은 관리 가능한 동력도 아니다. 이러한 정보는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비트코인도 물리적 실체가 없다. 유체물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관리되는 에너지, 동력이라 보기도 어렵다. 그 속성만 놓고 보면 비트코인은 디지털 전자정보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우리 법원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비트코인의 재물성을 부정했다(수원고등법원 2020. 7. 2. 선고 2020노171 판결, 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 그 결과 오입금 된 비트코인을 써버린다 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배임죄도 아니지만 민사적 책임 있어
그렇다면 배임죄는?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는 범죄다(형법 제355조 제2항). 배임죄에서는 '재물' 유무가 문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누군가로부터 비트코인을 오전송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위 대법원 2020도9789 사건에서 1심과 항소심 법원은 신의칙을 근거로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라 보아 배임죄 성립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가상자산의 경우 보내는 사람 주소만 알 수 있을 뿐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봤다. 법리상 타당한 판결이다.
그렇다면 민사적으로 A씨는 B씨한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아도 될까? 그것은 아니다. 민사적으로는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