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최고포식자에서 월가굼벵이로

2023-01-30 11:05:41 게재

이코노미스트지 "투자금융에서 소매금융으로 다각화 시도 … 결과는 실망스러워"

미국 대중잡지 '롤링스톤'은 13년 전 월가 은행 골드만삭스를 '인간의 얼굴을 한 흡혈오징어'로 묘사했다. 돈냄새가 나는 곳은 그 어디든 흡혈촉수를 꽂아 돈을 빨아들인다는 비판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월가 그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 은행 대부분이 휘청거렸지만 골드만삭스는 2009년 134억달러의 이익을 냈다. 최고의 해였다.

골드만삭스의 정치적 영향력도 종종 입방아에 올랐다. 골드만삭스와 미국 재무부 간 회전문 인사가 대표적이었다.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인지 민주당 소속인지도 무관했다. 최근 3명의 재무장관과 그 밑의 수많은 참모들이 골드만삭스 출신이었다.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금융규제기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세계은행, 호주·이탈리아정부에 이르기까지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수장 등 주요 보직을 장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골드만삭스는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시장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손쉽게 돈을 벌었다. 그에 대해 무자비하다거나 약탈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같은 비판은 주요 기업들이 채권과 주식을 발행하거나 기업을 상장할 때 골드만삭스에 자문을 의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편이 되는 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골드만삭스가 비웃던 오랜 경쟁자 모간스탠리는 지난 10년 간 골드만삭스를 여러 방면에서 앞섰다. 모간스탠리는 골드만삭스와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틀의 변화를 신속히 이해했다. 투기적이고 변동성 큰 매매에서 보다 예측가능하고 안전한 사업으로 전환했고 다각화했다. 골드만삭스도 그같은 전환에 시동을 걸었지만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달 17일 2022년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이익 13억달러에 유형자기자본이익률(ROTE)은 4.8%에 불과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CEO조차 "실망스럽다"고 표현했다. 소매금융 부문의 부진 때문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월가 경쟁기업들뿐 아니라 미국 대부분의 은행들보다 뒤처졌다. 이달 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골드만삭스의 소매금융 부문을 조사하고 있다"며 "골드만삭스가 소매금융 대출을 늘리면서 적절한 감독을 했는지, 경영 및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많은 금융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금리가 오르고 증시가 하락하면서 투자은행의 핵심사업인 거래 자체가 줄었다. 월가 금융기업 대부분은 해고를 단행하며 비용을 줄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간부들 보너스를 절반으로 줄였고 이달 11일엔 직원 6%를 해고했다.

골드만삭스의 주력사업은 기업고객 자문과 거래다. 이 부문에서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이 분야의 이익은 주기를 탄다. 최근 수년 동안 괜찮았다. 2020년 자산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으로 거래량이 커졌다. 2021년 증시활황으로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이 급증했다. 2022년 여러 불리한 조건이 있었지만, 골드만삭스 채권사업부는 금리인상을 적극 활용했다. 골드만삭스는 2021년 216억달러 이익을 내면서 2009년 기록을 넘어섰다. ROTE도 24.3%에 달했다. 2007년 이후 최고기록이었다.

골드만삭스가 시장 덕을 본 것만은 아니었다. 경쟁은행들로부터 사업을 빼앗아오는 데도 성공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JP모간체이스 등 미국 5대 은행의 채권매매의 경우 골드만삭스 비중은 2019년 15%에서 2022년 22%로 늘었다. 주식거래와 M&A와 IPO 자문에서도 비중을 늘렸다. 지난해 4분기 골드만삭스의 투자금융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19년 9.2%에서 2022년 16.4%로 상승했다. 솔로몬이 2018년 수장에 오른 이후 골드만삭스의 연평균 주주환원율은 13.2%에 달했다.

문제는 투자금융이 변동적이라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점진적이고 예측가능한 수익을 원한다. 그같은 측면에서 골드만삭스의 성장은 지난 10년 간 정체됐다. 투기적 매매는 골드만삭스 이익의 큰 원천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규제가 강화되면서 골드만삭스는 더 많은 자본을 충당해야 했다. 때문에 2018년 취임한 솔로몬 CEO는 소매금융과 자산관리 등 더 안정적이고 보다 예측가능한 사업으로 신속히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비슷한 전략으로 기적을 낳은 모간스탠리를 모방한 것이었다. 골드만삭스가 승승장구하던 시기 모간스탠리는 만년 낙오자였다. 2010년 모간스탠리 CEO가 된 제임스 고먼은 화려하지만 부침이 큰 투자금융 사업이 규제강화로 힘들어질 것을 일찍 간파했다. 그는 씨티그룹으로부터 자산관리기업 '스미스 바니'를 인수했다. 고객들이 매년 자산관리 수수료로 내는 예측가능한 수입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 200억달러를 들여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E트레이드'와 또 다른 자산관리기업 '이튼 반스'를 인수하면서 다각화 노력을 배가했다.

고먼 CEO가 취임한 2010년 이후 모간스탠리 주주들은 연평균 11.4%의 수익을 얻었다. 골드만삭스보다 50% 높았다. 솔로몬이 골드만삭스 수장이 된 2018년 모간스탠리 시가총액은 골드만삭스와 비슷해졌다.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었다. 현재 모간스탠리 시가총액은 골드만삭스의 1.3배다.

2006~2018년 골드만삭스를 지휘한 솔로몬의 전임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2016년 그는 소매금융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인터넷 개인대출 플랫폼 '마커스'를 출범시켰다. 소매금융은 JP모간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경쟁은행들이 재미를 보던 분야였다. 골드만삭스는 대출 확대 드라이브를 걸었다. 신용카드 빚을 관리하려는 개인에게 최대 3만달러까지 대출해줬다. 골드만삭스는 2019년 애플과 신용카드 파트너십을 맺었고 2021년엔 22억달러를 들여 전문대부업체 '그린스카이'를 인수하는 등 적극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세전손실은 38억달러에 달한다. 2020년 8억달러였던 손실이 지난해 19억달러까지 늘었다.

골드만삭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데니스 콜먼은 2020년 개정된 회계규정을 탓했다. 대출 자회사가 매출을 발생시키기 전 미래의 잠재손실 충당금 등 대출 비용을 미리 계상토록 하기 때문에 실적이 나쁘게 보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충당금을 경쟁기업들과 비교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4분기 대출액의 13.5%를 충당금으로 쌓았다. 서브프라임 대출기업 '캐피털원'의 2배 수준이다. 이 기업은 같은 기간 대출액의 7%를 충당금으로 쌓았다. 결국 골드만삭스의 부실대출이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콜먼 CFO는 "골드만삭스의 소매금융 업력은 짧다"며 "만약 영업기간이 15~20년 됐더라면 누적데이터를 통해 연체 가능성이 높은 고객들을 배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골드만삭스는 소매금융이 전체 매출에 3%에 그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소매금융은 장기적으로 주변으로 밀려서는 안되는 사업이다. 다각화의 핵심이 자본시장의 변동성에 영향을 받는 이익 비중을 크게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매금융 부실이 골드만삭스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골드만삭스는 2022년 전 사업부에서 비용과 충당금으로 337억달러를 계상했다. 이중 10%를 넘는 35억달러가 소매금융 플랫폼에 할당됐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도 실수를 인정했다. 마커스를 통한 소매대출을 중단했다. 솔로몬 CEO는 최근 "우리가 너무 많이, 너무 성급히 일을 해치우려 했다"며 "아마 소매금융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재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골드만삭스에 대한 투자자 인식이 달라졌다. 1999년 골드만삭스 주가는 장부가치의 4배였다. 현재는 장부가치 수준에서 거래된다. 반면 모간스탠리는 장부가치의 1.7배에 거래된다"며 "오래된 경쟁관계에선 다소 당황스런 대목이다. 소매금융에서 모간스탠리에 뒤진다는 건 골드만삭스에게 굴욕"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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