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 회고록 리뷰
얼마 전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이 공개됐다. 개인 회고록은 주관성이 개입되어 있지만 폼페이오가 북미정상회담의 총괄 실무책임자였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우리가 좀 더 깊이 들여다볼 부분은 있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의 주한미군 용인 및 대중 인식 관련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동북아 세력균형을 위해서는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용인론의 기저에는 중국으로부터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고 무엇보다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개선과 관련된 기대감이 조건부로 깔려 있다.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소위 '대북 적대정책'이 폐기되고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면 중국이 사사건건 자신들에게 간섭하는 것을 배제하고 오히려 미국 및 서방세계와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그리고 2018년 북미관계 개선을 앞두고 나온 북한 지도자의 이런 발언들은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최근 북중 밀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정책 전환에 연유한 부분이 크다. 바이든행정부의 소극적인 대북정책과 최근 미중관계의 갈등 고조 속에서 북한은 당분간 중러에 밀착, 사회주의 연대에 따른 실리를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재량권 없는 북 대표들, 톱-다운방식 유효
둘째, 북한의 경직적 의사결정 과정이 회고록 곳곳에서 드러난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회담 때마다 북한은 중국과 협의해야 했으며 북한 실무자들은 하노이 회담 결렬의 주요 원인이 되는 제재와 핵폐기 교환 범위를 실무적으로 매듭짓지 못하고 지도자간 결정사항으로 남겨두었다. 실제로 폼페이오는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북한 실무자들의 재량권 부재에 대해 답답함을 여러차례 호소했다고 한다.
과거 남북회담 과정에서도 북측 수석대표는 주요 결정의 재량권을 많이 보유한 것 같지 않았고 자신의 언행과 결정이 상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북한의 경직된 협상 방식은 향후 북한과의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지난 트럼프식 톱다운 방식(top-down)이 일정 효과를 거두었던 연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셋째,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회동시 문재인 대통령을 배제하기를 원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왜 김정은 위원장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는 유추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우리측에 전가하고 있었고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를 다시 단독으로 만나 마무리를 짓고자 했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의 연장선상에서 판문점 회동을 이용하려 했고 우리측의 개입을 차단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어쨌든 북핵문제의 협상 주도권을 북미 사이에 맡겨 놓을 경우 이러한 의도적 패싱 현상은 향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의 대북협상이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속에 남북미 협상구도를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긴요함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폼페이오는 트럼프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막을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한 2013년 병진노선 채택 당시 오바마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통해 이러한 시도를 저지하지 못했고 현재 바이든행정부의 바스킷에도 북핵문제는 실종되어 가고 있다. 미중갈등을 이용해 북한은 핵능력 고도화에 올인중이다.
대북정책 총평과 관련해서는 폼페이오 자신의 정치적 목적과도 연결되어 있어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대북정책을 가져가야 할지는 한미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 내심 트럼프 당선 기대할 수도
트럼프행정부 시기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트럼프와 김정은 간 27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표현하면서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의 흔적이 여기 저기 목도된다.
2024년 미국의 대선이 잡혀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아직 김정은 위원장의 속내는 보이지 않지만 내심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할 수도 있다. 만약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트럼프와 김정은 간 톱다운 방식의 문제해법이 재현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볼턴의 길로 갈 것인지, 문재인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한반도의 운명은 다시 요동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