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첨단기술에 대해 메타적 시각을 갖자

2023-02-07 11:09:37 게재
최진희 서울시립대 교수 환경독성학

1955년 당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잡지인 '라이프 (LIFE)' 표지에 행복한 표정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들을 하늘로 던지는 젊은 부부와 자녀의 모습이 실렸다. "이제 마음껏 버리며 사세요" 쯤으로 번역될 만한 "Throwaway Living"이라는 제목과 함께.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등장으로 새로운 생활방식이 열린다는, 시대전환을 기념하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등장 이래 그렇게 편리하게 쓰고 버렸던 당대의 첨단 신소재 플라스틱은 불과 반세기만에 미세플라스틱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왔고, 이제는 카페 내에서 일회용 컵 사용마저 금지되는 세상이 되었다.

DDT는 1873년 최초로 합성되었고 그 후 살충제 용도로 개발되어, 농업 생산성 향상을 통한 식량문제 해결과 말라리아 같은 위생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공로로 DDT의 살충 효과를 발견한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라는 화학자는 1948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이처럼 획기적인 물질 DDT는 불과 10여년 후인 1962년, '침묵의 봄'을 나오게 한다. '침묵의 봄'은 세계 최초로 DDT와 같은 화학물질을 남용하게 되면 생태계가 파괴되어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책이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이 책이 발간된 뒤 1973년 미국에서는 DDT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되었다.

화학물질 혜택 이면의 유해성도 봐야

PCB라는 물질은 미국의 한 화학회사에서 발명되어 변압기의 절연재 등 다양한 산업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1968년 일본 가네미 지방의 주민들에게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질환이 다수 발생했다. 그런데 그 원인이 파이프 부식으로 PCB가 누출됐고, 그것에 의해 오염된 쌀겨기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PCB는 한번 환경에 나오면 분해되지 않고 오래 잔류하면서 인체에 축적되고 발암성과 같은 독성을 갖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1970년대 미국 등 주요국에서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런 예는 역사 속에 무수히 많다. 그리고 불행히도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사고가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누리는 삶의 질은 화학물질의 혜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학물질은 생활용품 의약품 농약 산업용 원료까지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전반에서 본질적 요소로써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동전과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상은 모두 양면(兩面)이 존재한다. 화학물질 역시 다르지 않다. 화학물질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 이면에는 반대급부, 즉 유해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크게 또는 작게 경험해왔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위치는 마치 서구 중세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비견된다. 그 시절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종교가 물질적 정신적 활동의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오늘날 과학이 그 역할을 넘겨받은 셈이다. 현대사회는 과학과 그 성과를 우리 실생활에 녹여 내기 위한 공학의 만남으로 탄생한 과학기술이 혁신을 이끌어왔다. 인공지능과 함께 사회 전반에 걸친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미래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첨단과학기술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결국은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이끄는 사회변화는 마치 '레드퀸 레이스'를 뛰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뒤쳐질 것 같아 나도 일단은 같이 뛰고 보자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혁신과 풍요 속의 이면, 역사에서 배울 때

플라스틱도, DDT도, PCB도, 가습기살균제도 처음 나왔을 때는 혁신적인 물질이었다. 일상생활의 사소한 편리함부터 산업적 효과,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는 그런 물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첨단물질이 가져다 주는 혁신과 풍요에 열광하느라 그 이면에 대해 충분히 사유하지 못했고,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혁신기술이 나올수록 그 기술에 열광하고 경쟁적으로 무조건 따라가기보다는 그 이면에 대해서도 차분히 숙고하며 입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기술이 가져다 주는 당장의 혜택 뿐만 아니라 넓고 긴 시각에서 인식하는 메타적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