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채소 생산의 첫 단추, 육묘

2023-02-14 10:49:06 게재
이지원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겨울이 한창이지만 농촌은 이미 분주하다. 시설 안에서는 봄에 심을 모종을 기르는 육묘가 한창이다. 이제 농업인이 모종을 직접 기르는 경우는 없다. 필요한 품종과 수량, 시기를 따져 주문하면 모종은 전문 육묘시설에서 키워져 공급된다.

모종 키우는 육묘, 산업으로 분업화

튼튼한 모종은 물과 영양분을 잘 흡수하고 병충해를 거뜬히 이기며 많은 수확물을 생산한다. 이 때문에 농업에서는 육묘 단계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어린 모종이 잘 자랄 수 있는 맞춤 환경을 조성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전문적으로 모종을 키우는 육묘는 이제 하나의 산업으로 분업화됐다. 최근에는 정밀기술과 첨단시설이 결합해 더욱 균일하고 깨끗한 모종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이를 '공정육묘'라고 한다.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농촌진흥청이 1992년 도입한 공정육묘산업은 2010년 1870억원에서 2021년에는 2515억원으로 10여 년 새 규모가 34.5% 증가했다.

공정육묘기술의 도입은 농사의 판을 바꿨다. 모종을 기르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을 줄였고, 모종 판매 시기 확대로 재배 주기를 다양화했다. 토지 이용률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튼튼한 모종을 사용함으로써 생산량이 늘었다. 공정육묘 도입 전인 1990년과 비교하면 주요 채소의 토지 생산성은 최대 122%까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기관 대학 등에서는 모종을 키우는 틀 흙 비료 등의 소재 개발부터 키우는 동안의 환경 및 병해충 관리, 유통·저장 관리 등 육묘 관련 전 범위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육묘는 복합적인 기술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집중 적용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씨앗을 심고 싹이 나면 접을 붙이고, 기른 뒤 출하, 유통하는 각각의 단계마다 전문 시설과 정밀한 장비가 필요하다. 그간 개발한 대표 정밀기술로는 자동으로 용기에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은 뒤 물을 주는 파종기, 접붙인 대목과 접수가 서로 잘 붙도록 하는 인공광원 활착 기술 등이 있다.

기술과 산업 측면에서 중요한 영역 안착

공정육묘가 도입된 지 약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육묘기술은 세계적 수준까지 올랐다. 다만 농업 전반에 나타난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이 육묘 분야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60세 이상 종사자는 2018년 32.1%에서 2021년 37.7%로 증가했으며, 경영비 중 인건비는 25.7%로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화 기계화 기술개발이 시급하다. 노동력을 줄이고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종이 화분을 활용해 농작업의 편리성을 높이고 본밭에 아주심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영상으로 모종을 인식하고 접을 붙이는 로봇과 이 접목 로봇에 사용하기 좋은 모종 생산관리 기술도 개발했다. 육묘 과정 중 모종 상태를 영상으로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영상분석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밥상을 풍성하게 채우는 채소산업은 농업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작인 육묘는 이제 기술과 산업 측면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안착하고 있다. 스마트한 육묘기술과 전문 육묘인의 경험이 잘 어우러지면 작물 생산의 첫 단추는 문제없이 끼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