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서는 출발선, 다시 탑골공원
1919년 1월 21일. 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임금인 고종황제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를 영결하는 국장일은 3월 3일로 정해졌다. 비록 나라를 지키지 못한 왕이었지만, 하나의 사건이 만들어 낸 감정의 소용돌이는 기폭제가 됐다. 당시 대일 항쟁기는 10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국장이 치러지기 이틀 전인 3월 1일. 현재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탑골공원은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로 가득 찼다. 서울의 첫번째 공원에서 기미독립선언서가 선포됐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조선은 독립국이며 그 국민은 자유롭고 평등한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이것은 사실상 민주공화국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선포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헌법의 중요한 기틀이 되고 있다. 민주공화국 체제를 구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1운동 정신은 우리 민주공화국의 기본 이념으로 이어졌다.
'종로 모던' 세계가 본받을 패러다임
사실 탑골공원에는 3.1운동에 앞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자생적인 시민사회의 태동이 있었다. 3.1운동에서 200년을 거슬러 올라간 17~18세기다.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초정 박제가 등 실학사상가들은 '백탑파'를 형성했다. 그들은 쇄국이 아닌 문호개방을 통한 선진화를 꿈꾸는 실용적 근대화를 갈망했다.
그들이 주로 살던 곳 근처에는 아름다운 탑이 하나 있었다. 오늘날 보호막 안에 보존돼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흰 빛을 띤다고 해서 '백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백탑파의 탄생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존의 틀을 과감히 떨쳐내고 역동적인 미래를 그려가자는 근대 민주적 시민사회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서구 외세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굳건한 내재적인 힘으로 하나씩 이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돌고 돌아 다시 탑골공원. 3.1 혁명은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미완성이 됐지만 지금 종로는 또 다시 주어진 기회 앞에 서 있다. 앞서가는 다른 나라의 모델을 황급히 쫓아가느라 들여다보지 못했던 우리의 저력을 이제는 직시할 수 있다.
종로구는 탄탄하게 축적된 문화경쟁력을 바탕으로 끝내 꽃피우지 못했던 우리 식 고도 현대화를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은 문화가 성장동력으로 작동하는 시대다.
한국적 특수성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추며 이른바 'K-문화'의 힘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우리식 고도 현대화를 잘 구현해 세계가 본받을 만한 패러다임을 창출하자는 것이 바로 '종로 모던'이다. 이번 104주년 3.1절을 기점으로 탑골공원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종로 모던' 에너지의 주된 응축점이 될 것이다. 종로구는 민족의 얼이 담긴 탑골공원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이곳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를 되살리는 작업을 통해 그때의 기운을 발산하도록 할 것이다.
탑골공원이 간직한 의미 되살리는 작업
하나된 마음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던 3.1운동의 에너지는 종로구는 물론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로 힘차게 퍼져나갈 것이다. 종로구가 가져올 질적인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