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 헌신한 외국인들

2023-02-28 11:20:28 게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헐버트 테일러 베델 묻혀

25일 찾은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한국인이라면 하루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칭송했던 호머 헐버트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나는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고 했던 헐버트는 1886년 23세 교사로 한국을 첫 방문했다. 1889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국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했고 한국 YMCA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고종황제의 외교자문을 맡아 조선 독립운동을 펼쳤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도록 해 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도록 했고 그 또한 헤이그에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이 사건 후 일제의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3.1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다"라던 헐버트는 1949년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87세에 한국에 다시 왔지만 노환으로 며칠 만에 사망해 자신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안장됐다.

일반인으로는 3.1독립선언서를 해외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가 잠들어 있다. 그는 경기도 화성리에서 벌어진 3.1운동 보복 제암리 학살사건을 보도했다. 일제의 감시 대상이었던 테일러는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1941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고 이듬해 추방됐다.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유골은 1948년 이곳에 안장됐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민족지사들을 신문사 주간으로 영입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던 베델도 이곳에 묻혀있다. 연세대를 세운 언더우드 일가,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위더슨, 1928년 결핵 환자를 위해 최초의 요양원을 설립하고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며 3대에 걸쳐 헌신한 셔우드 홀 일가도 잠들어 있다.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턴,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독립운동을 지지한 일본인 소다 가이치, 숭실학당을 설립한 베어드, 배화학당을 세운 캠밸 등도 한강이 보이는 이곳에 영면해 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엔 외국인 선교사와 가족 145명이 잠들어 있다.

묘역의 자원봉사자는 "2006년 이후 방문한 사람들이 100만명으로 2월부터는 매주 1200명씩 찾는 것 같다"며 "당시 선교사들은 교육과 의료 활동을 주로 했지만 직·간접으로 조선 독립을 지원하고 헌신한 분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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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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