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정부 해법 논란

"제3자 변제, 대법원 전합 취지 거슬러"

2023-03-06 00:00:01 게재

피해자 동의 없는 채무인수 불허 주장도

한국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내놓자 법조계도 어수선하다. 피해자들에 대해 전범기업의 직접 손해배상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은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병존적 채무인수'는 행정안전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한국 쪽 수혜기업으로부터 출연금을 받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방식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직접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취지에 명백히 반한다는 법조계 일각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병존적 채무인수'는 전범기업의 채무는 그대로 남겨둔 채 제3자가 전범기업과 함께 채무를 떠안는 방식이다. 민법에 따르면 병존적 채무인수는 원칙적으로 채권자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지만, 민법 제469조는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에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는 채권자 동의 없이 제3자 채무인수가 허용되지 않는 예외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전범기업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이라는 '채무의 성질'과 전범기업으로부터의 직접 배상을 원하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피해자 동의 없는 제3자 채무인수가 허용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6일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진단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래형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는 일신전속적 급부이기 때문에 전범기업이 직접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범기업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제3자(한국기업 등)가 변제하는 것은 강제징용 피해자 의사뿐만 아니라 채무의 성질에 비추어봐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국민의 법 감정과 일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대법 판결이 강제징용 피해자 손을 들어줬더라도 실질적인 손해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기업들이 배상 판결에 불복하거나 소송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가해 기업들이 한국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한 뒤 배상이 이뤄질 것을 요구했다. 이 역시 대법원에서 멈춰 있다. 주심은 오석준 대법관이다.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자산 압류 뒤) 현금화 절차에 대해서 피해자나 유족들의 의견을 모두 듣지는 못한 상황"이라면서도 "정부 입장에 동의하시는 분이 계실 수 있겠지만 소를 취하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그동안 강제 징용 사건 대리인단에 참여한 또 다른 변호사는 "범죄 피해자에 대해 정부나 공공의 지원을 가해자의 사과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가 강제징용 사건 등을 두고 양승태 대법원과 재판 거래를 한 것이 사법농단 사건의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당시 사법농단 수사팀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검사)이었다.
안성열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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